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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8장

광야길을 걷게하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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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3 15:48 조회3,4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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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

2007년 09월 02일(주일예배)

본문 / 신명기 8:1~3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간 애굽에서 살았습니다. 요셉이 총리로 있을 때에는 대접을 잘 받으며 살았으나, 불행하게도 요셉이 죽은 후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세워지게 되면서 이들은 애굽의 종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극심한 고통으로 하나님 앞에 울부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그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신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아니하시고,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신 후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성도들의 일생과 매우 흡사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애굽에서 종살이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수 믿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원수 마귀의 종노릇을 하며 살았으나, 어느 날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처럼 우리는 마귀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따라서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마치 광야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광야는 매우 척박한 곳입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물이 없습니다. 낮에는 강렬한 태양 빛으로 뜨겁고, 밤에는 매우 춥습니다. 물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풀이 없어 목축할 수도 없는, 사람이 살아갈 수도 없는, 매우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더구나 광야에 사는 전갈과 불뱀으로부터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이런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던 고센 땅에서 가나안 땅까지는 빠르면 1주일, 늦어도 2주간이면 갈 수 있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 강 근처 가네스바데아까지 갔던 적이 있습니다(민 13:26). 이곳에서 요단 강을 건너면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지 못하게 하시고, 광야 길을 거쳐 40년을 돌아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왜 광야 길을 걷게 하셨을까요?

본문 2~3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살 자격이 아직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교육과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사람은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저절로 성숙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성도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의 장이며, 훈련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부족했고, 신앙과 정신상태가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민수기 13장 31~33절에 보면,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언제 자신들의 힘으로 애굽 군대를 이기고 출애굽했습니까? 가나안 정복도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로 정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믿음 없는 말을 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이스라엘 백성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했습니다(민 14:4). 하나님께서 이를 보시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이들에게는 선민사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하시고, 홍해를 갈라 육지같이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을 다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꿈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믿음이 없었고, 노예근성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민수기 14장 11, 22~25절에 보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멸시한 이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들이 보낸 광야생활 40년의 기간은 참으로 고달픈 시련의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아직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유익한 훈련 기간이었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공군장교로서 6주간의 고된 훈련을 받았습니다. 장교 훈련은 일반 사병 훈련과 비교되지 정도로 훈련의 강도(强度)가 매우 셉니다. 처음에는 총도 무겁고, 철모 또한 얼마나 무거운지, 목에 힘을 주고 버텨야 철모를 제대로 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침마다 비행장을 구보로 돌 때,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훈련이 몸에 배여 마치 몸이 날아갈듯이 가벼웠고, 구보도 쉬워졌습니다. 나중에는 대전에서 계룡산까지 완전무장하고 달렸습니다. 6주간의 훈련을 통해 저의 몸은 매우 강해지고 단단해졌습니다.

 

예수 믿어 구원 받은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아직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의 성품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아직 심령이 변화되지 못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엡 4:22~23).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많은 시련을 허락하시고, 광야 길을 걷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는

첫째, 낮추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나,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면, 불쌍히 여겨주시고, 용서해주시며, 그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약 4:6).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잠 16:5).

교만한 자는 도무지 회개할 줄 모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처럼 큰소리칩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잠 16:18). 또 교만한 자는 감사할 줄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일이 잘되면 자신의 힘으로 된 줄 알고, 실패와 고통이 오면 도리어 원망 불평합니다. 이런 사람은 결단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을 낮추시기 위해, 다시 말해서 겸손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 길을 걸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C.S.루이스(C.S.Lewis)에게 왜 고난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타락한 인간에게 고난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교만했겠는가?”라고 반문(反問)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만을 꺾고 겸손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둘째, 명령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떡이 있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여 떡을 매우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떡보다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구원이 없고, 생명이 없으며, 진정한 행복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때,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떡 걱정 없이 살게 됩니다.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훈련하실 때, 주리게도 하시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기도 하셨습니다.

 

만나는 ‘이것이 무엇이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실 때, 여러 날 치를 준 것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만 주셨습니다. 하루만 지나면 벌레가 생겨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기에 욕심을 내어 만나를 가져가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날마다 아침에 밖에 나가 만나를 거두어 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안식일 전에는 두 배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러 나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른 날과 달리 이 날만은 하루가 지나도 벌레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저히 안식일을 지키도록 40년 동안 훈련시키셨습니다. 즉 안식일을 지키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책임져주시며,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을 것만 해결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의복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고, 이들의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신 8:4).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의복과 건강까지 책임져주셨습니다. 40년 동안 옷이 낡아지지 않아서 늘 새 옷 같았고, 때때로 가시밭길 돌짝 밭을 걸어 다녔어도 발이 부르트지 않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에서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먹거리와 의복 뿐 아니라, 낮에는 구름기둥이 그들 위에 나타나 한낮의 뜨거운 직사광선을 막아주었고, 밤에는 불기둥이 나타나 어두움을 밝혀주었고,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보호해주었으며 추위를 면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 불평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기적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한 기성세대들은 한 명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시련이 겹쳐 올 때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원망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망불평은 백해무익합니다. 시련이 왔을 때, 시련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련만 바라보면 길이 보이지 않고, 앞이 캄캄해지며, 낙심되어 깊은 수렁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때 눈을 들어 그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땅만 내려다 볼 것이 아니라 하늘을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주십니다. 기적을 주시고, 넘치는 축복을 주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조건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말씀의 은혜 가운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날마다 천국을 맛보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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