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7 20:56 조회3,405회 댓글0건본문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2002년 07월 05일(금요철야)
본문 / 민수기 14:1~5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지혜로운 건축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에 각 성도가 집을 짓는데, 어떤 사람은 금으로, 어떤 사람은 은으로, 혹은 보석이나 나무나 풀로 집을 짓습니다. 그 집을 지은 다음에 각각의 공적이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4~15절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평생 자기 나름대로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집을 잘 지으려면, 먼저 그림을 잘 그려야 합니다. 집을 지으려고 할 때, 설계를 잘 해야 좋은 집을 짓는 것처럼, 자기가 평생 어떤 집을 지어서 하나님 앞에 바칠 것인지 그림을 잘 그려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림도 없이 막연히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성공적으로 집을 지으려면 그림을 적당히 그릴 것이 아니라ㅡ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그려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도 그림을 그려봐야 합니다 “내가 여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복되고 아름답고 성공적일까? 내가 지금부터 시작해서 주님 오시는 날까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다가 갈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창세기 12장 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축복받을 것인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실 축복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4~17절에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아브라함과 그 자손이 살 땅으로 아브라함을 데리고 가서 “너 여기 동서남북으로 다녀봐라. 너와 네 자손이 차지할 땅이다. 얼마나 큰가. 어떻게 생겼나. 너의 자손이 어떤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한번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창대해져서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5장 5절에 보면,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하나도 낳지 못해 자식이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상상하면서 그림을 그려놓고 살아갈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앞으로 될 일을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3~1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17장 4~8절에 보면,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 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가게 되고. 또 그 후에 야곱과 그 자손들이 애굽으로 가서 지내게 될 400년 동안을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 아직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이지만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고,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땅의 티끌같이 많아질 뿐만 아니라, 자손 중에 왕이 많이 나와 그들이 나라를 세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확실한 그림을 그리고 살아갈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그림을 그려주셨을 때, 사라는 나이가 많아 임신할 수 없었습니다.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사라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 17: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웃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었고, 사라가 90세가 됐는데 자식을 낳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곧 돌이켰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므로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음이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했습니다.
로마서 4장 18~2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이 앞으로 백 년, 이백 년, 천 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림을 그려놓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 종합해보면, 앞으로 자손이 얼마나 많아지고, 우리가 살 땅이 얼마나 넓고, 그 곳에서 자손들이 어떻게 축복받고 살 것인가를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장차 이렇게 될 것이다.”하는 그림을 그려놓고, 그림대로 될 것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그것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셔서 아브라함이 머릿속에 그려놨던 그림을 후손들도 머릿속에 그리며 항상 그 그림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자신에게도 축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신실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고, 능히 이루실 것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은 100% 성취된다는 것을 믿습니까? 무엇보다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자기의 조상 아브라함의 그림을 잊고 살았습니다. 가나안의 꿈을 다 잊고 살았습니다.
민수기 14장 2~4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400년 동안 애굽에 가서 종살이하고 다시 돌아온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려주신 그림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온 백성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되는구나. 우리의 그림대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구나.”라고 확신을 갖고 나아가야 하는데, “애굽 땅에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서 칼에 망하게 하려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자.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이것은 아예 애굽 사람이 되겠다는 의미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서 영원히 애굽 사람의 노예로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축복을 주시려고 말씀하시고, 그림도 분명히 그려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그림은 다 팽개쳐버리고, 애굽에 돌아가서 노예생활을 하겠다니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입니까!
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려주신 그림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애굽에 가서 그저 목숨이나 붙이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막혔을까요.
민수기 13장 3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냈으니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 된 사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수령 된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믿음이 없어서 무엇을 보든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민수기 13장 28~29, 31절에 보면,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싸워보지도 않고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습니다.
민수기 13장 32~33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합니까. 이 말을 듣고 백성들은 아주 끔찍하게 망하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민수기 14장 1~2절에 보면,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거나 애굽 땅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하고 절망하고 한탄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부정적인 말은 빈 말이라도 하지 마세요. 이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말이 씨가 되어서 그렇게 심판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말한 대로 내가 해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정적으로 말하고 생각하면 그대로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말은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신명기 1장 26~28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완전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해서 멸망시키려고 인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습니까.
그러니까 싸워보지도 않고 실패한 것입니다. 망하지도 않았는데 망한 것처럼 그림을 그려놓고 상상하면서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무슨 일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어지면 사람들은 항상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얼마나 고통을 주는지 모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날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자꾸 망할 것을 생각합니다. 병들어 죽는다든지, 사업에 실패한다든지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잘못된 그림을 자꾸 그리며 일어나지도 않은 것을 고민하고 고통을 당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다면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어떤 형편에 처해 있다고 해도 부정적인 생각은 절대로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 보면,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말을 해야지, 부정적인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지고 환경이 어려워져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을 가면서 얼마나 불평하고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세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신 1:29~33)”라고 말했습니다.
고생하면서 사막 길을 걸어온 사람이 하나님께 “하나님, 왜 나를 홀로 두시고, 왜 나를 사막 길로 인도하셨나이까?”라고 원망했습니다. 자기가 걸어온 발자국을 보니까 자기 발자국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혼자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네가 환난 당하고 고통 당할 때에는 내가 너희들을 안고 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발자국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생스러운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고 가듯이 우리를 안고 가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고 떠나시는 것이 아니고, 위험한 순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고 계시는 그림을 그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품에 안겨있는 그림을 그리세요. 어려움을 당할 때, 환난을 당할 때, 사막과 같은 길을 고생하면서 걸어갈 때,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안고 가시는 그림을 그리세요.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앞서 행하셔서 장막 칠 곳을 찾으면 불기둥, 구름기둥이 가다가 멈추었습니다. 여기에 장막을 치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머무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구름기둥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떠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앞서 행하시며 머물 곳에서 머물게 하시고 가야 할 곳에서 가게 하시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하나님께서 안고 가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신명기 1장 32절에 보면,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믿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금 인도하고 계시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게 될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신명기 32장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앉아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호위하시고 보호하시며 눈동자같이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2장 11~12절에 보면,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킬 때 높은 낭떠러지에서 새끼를 떨어뜨립니다. 새끼는 있는 힘을 다해보지만, 떨어져서 잘못하면 죽으니까 어미는 빨리 날아가서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습니다. 그리고 새끼를 날개 위에 얹고 다시 올라갑니다. 그렇게 몇 번 훈련하다 보면, 나중에는 새끼들이 자기 힘으로 날아다닐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때로는 전쟁도 치르게 하시고 어려움에 봉착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떨어뜨리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위기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독수리 어미가 준비하고 있다가 날개 위에 새끼를 받아 올라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구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도 능력도 지식도 생각도 완전하시고 실수가 없으십니다. 부족함이 전혀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완벽한 계획 속에 하루하루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셨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이사야 49장 14~18절, 22~23절에 보면,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침략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 괴로워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고 떠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다.”고 부정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를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놓고 항상 기억하고 계십니다. 혹시 잘못해서 매맞을 때도 있지만, 버리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싸매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잠시도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왜 어려움을 당하고, 지금 무엇 때문에 염려하고 있는지 주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해서 여러분들을 그대로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뜻이 있어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인도하고 계신 것뿐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dl 지금은 고생하지만 장차 그 자녀들이 돌아올 때에는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 일어날 것인지, 구체적으로 축복받는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자꾸 부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4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바르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바르게 살지 않고 죄를 범하면서 살면,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죗값인가 보다. 하나님께서 때리시나 보다. 하나님께서 떠나셨나 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나 보다. 이제 망하는가 보다.”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바르게 살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면,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검은 구름만 생겨도 망할 것 같고 죽을 것 같고 버림받은 것 같습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징계하시지만, 버리지는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2장 5~6절에 보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야단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할 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거나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를 이렇게 징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올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절대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믿음이 식어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식어지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믿음은 한번 가지면 영원불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뜨거워질 때도 있고 식을 때도 있습니다. 믿음은 강해질 때도 있지만, 약해질 때도 있습니다. 변하기 쉽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항상 믿음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굉장히 좋았던 때도 있었지만, 흉년들어서 걱정이 되니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면 안 되는데 내려가서 자기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거짓말하고,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처럼 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윗도 골리앗 앞에 나아갔을 때는 믿음이 얼마나 좋았습니까. 그런데 다윗이 낮잠 자고 일어나서는 자기의 충성스러운 신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반해서 죄를 짓고 음모를 꾸며서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다윗도 믿음이 굉장했던 때도 있었지만, 식어져서 형편없었던 때도 있습니다.
믿음은 한번 가지면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흔들립니다. 그러니까 10년 전에 은혜 받았다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믿음은 항상 불붙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이 꺼진 지 오래된 사람도 있습니다.
엘리야를 보세요. 우상을 섬기던 선지자들을 갈멜 산에서 죽일 때 얼마나 멋진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까. 그런데 이세벨의 말을 듣고 도망갈 때에는 그의 믿음이 형편없습니다. 낙심하여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나를 거둬가 주십시오.”하고 비관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엘리야가 위대한 선지자였다고 해서 항상 믿음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약해질 때가 있었습니다. .
우리의 믿음이 식어지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옛사람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래서 옛날처럼 거짓말도 하고 간음도 합니다. 옛날에 하던 버릇이 나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망할 것 같고 죽을 것 같고 안 될 것 같고 실패할 것 같고 자꾸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믿음이 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 없는 말을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문제 직장문제 사업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놓고 생각할 때,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그냥 생각일 뿐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믿음이 식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부정적인 그림을 자꾸 그리지 마세요. 절대로 용납하지 마세요.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떠오르면 ‘아! 내 믿음이 식어지고 있구나. 내 믿음이 약해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시기 바랍니다.
일시적으로 어려움도 있고 염려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셔서 오히려 유익하게 하시고 잘 되게 하시고 전화위복 되게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고 언제나 긍정적인 그림, 더 잘 된다는 그림, 축복받는 그림, 좋은 그림을 그리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면, 믿음도 약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받은 만큼 믿음이 견고해집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의 일생을 보면서 “나도 어려움을 당할 때 요셉처럼 살아야 하겠다. 자포자기하고 원망하고 자살하겠다고 소동부리지 말고 요셉처럼 살아서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전화위복 되도록 요셉보다 더 멋진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라고 긍정적이고 좋은 그림을 그리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을 때, 믿음이 생겨서 요셉과 같은 삶을 사는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나라도 망하고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총리가 되게 하시고 크게 영광 받으셨습니다. 이것을 보며 ‘아무리 망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다고 해도 다니엘처럼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기도생활을 하면서 승리해야겠다.’는 좋은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면,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고 믿음이 생기고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성경 말씀 그대로 환난이 많고, 시험이 많고, 미혹하는 자가 일어나고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것을 이기는 길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말씀을 읽고 듣고 말씀대로 살고 언제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으면 믿음이 견고해져서 승리할 줄 믿습니다. 절대로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넷째, 기도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만 바라보고 세상만 바라보기 때문에 자꾸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태풍이 불어올 때 우리가 태풍만 바라보면 걱정이 되고 불안하고 괴롭습니다. 태풍을 일으키시기도 하고 잠재우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태풍이 불어와도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면 나와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하나님을 찾는 사람,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살 길이 열립니다. 복을 받습니다. 은혜를 받습니다. 믿음이 부요해집니다.
여러분, 세상풍파 일어날 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살 길이 열립니다. 은혜 받습니다. 영안이 열립니다. 믿음이 더 좋아집니다.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가장 축복 받는 그림, 가장 성공했을 때의 그림, 가장 행복했을 때의 그림,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사는 그림을 그리면서 사세요.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세요. 가장 행복한 모습을 그림을 그려보세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사세요.
이런 그림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 받을 때 그릴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영감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을 때 축복의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성공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기도생활에 힘쓸 때, 우리가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은혜 받고, 기도하다가 능력 받고, 기도하다가 영안이 열리고 깨달음을 얻으면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의 형편은 너무 가난하고, 판잣집에서 먹을 것도 제대로 없고, 회비도 내지 못하고, 중학교에 갈 형편도 되지 못하고, 세상적으로 볼 때는 아무 그림도 그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은혜 받고 성령 충만함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제일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주님 앞에 섰을 때,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할까?’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다 보니 ‘전도 많이 해야 되겠다. 이 나라 백성을 모두 구원하는 목사가 되어야 되겠다. 그런 목사가 되려면 공부도 열심히 해야 되겠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제일 좋은 학교를 다녀야겠다. 그렇게 한 다음에 신학대학원에 가서 공부하여 목사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 그림을 그리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이 저를 평생 끌고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이실지 모르지만, 저는 하나님께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때가 됐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전심전력으로 뛰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제 힘으로는 못합니다. 성령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현재 부산 400만을 복음화하고, 우리 교회가 50만 성도가 모이는 교회가 되고, 우리 교회에 1만 개의 사랑방 모임이 있고, 이 나라를 복음화하고 세계를 복음화하기 위해 5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순교자의 반열에 선다면 순교하겠지만, 아무나 순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니까 제가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주님 오실 날까지 내가 어떻게 살다가 갈 것인가 하는 그림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이 그림을 다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그림을 그려보세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복된 삶인지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세요.
젊은 학생들은 평생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세요. 앞으로 어떻게 공부하고, 어떤 일을 하고, 주를 위해 어떻게 살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려보세요. 부정적인 그림은 그리지 마세요.
우리가 항상 말씀에 은혜 받고, 기도하다가 은혜 받고, 믿음을 가지면,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가장 좋은 그림을 그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원과 비전, 꿈을 주셔서 이루게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