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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15장

만나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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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5:46 조회3,2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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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의 교훈

 

만나의 교훈

2010년 09월 03일(금요철야)

본문 / 출애굽기 16:31

 

창세기 15장 13~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실 땅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4백 년 동안 애굽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시요,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동을 시켜서 건물도 짓고, 엄청난 일을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잃어버리면 나라에 큰 손실이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애굽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을 항복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갈 때, 바로의 마음이 변해서 바로는 애굽의 군사들을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군사들은 홍해에 빠져서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모세와 미리암의 노래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에 편안하고 좋은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고 일어나면 광야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서남북 사방이 다 광야였습니다. 그러니까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목축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불뱀과 전갈이 있어서 물리면 독이 올라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낮에는 매우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굉장히 추웠습니다. 얼마나 견디기 어렵겠습니까. 그리고 광야에는 물이 없었습니다.

노인들과 어린 아이를 포함해서 약 2백만 명이 광야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다리가 아프고 피곤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이 없으니 갈증이 났을 것입니다. 이처럼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가나안에 이르기 전에 광야 길로 인도하신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훈련을 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광야는 최고의 신앙 훈련 장소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러면 광야에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저히 살 수 없는 광야에서 살려면,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도무지 살 수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도우시고, 인도하시는가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광야만큼 좋은 신앙 훈련 장소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으세요. 하나님께 부르짖으세요. 그러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가 편안하고 걱정거리가 없으면, 얌전하게 기도합니다. 급하게 심각하게 기도할 문제가 없으니까 얌전하게 기도합니다. 그런 사람은 큰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광야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보세요. 보통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사적으로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반드시 불을 받습니다.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서 체험적인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기도하기만 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중에 광야 길과 같은 험한 길을 걷고 있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답답하고, 돕는 자도 없고, 살 길이 막막해서 죽고 싶은 심정을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광야와 같은 형편에 있을 때, 부르짖어보세요. 하나님을 찾아보세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만나주십니다. 응답해주십니다. 은혜를 받습니다. 체험적인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중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시절에 저를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바로 광야 길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중학교 때에도 아주 어려웠지만, 고등학교 때에는 더 어려웠습니다.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답답하고 괴로워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자살할 수는 없었습니다.

죽는 방법을 생각해보니 금식기도하다가 죽으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죽기 위해 금식기도했습니다.

내 영혼을 불러가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죽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지나도 죽지 않고, 이틀이 지나도 죽지 않고, 사흘째 되니 배는 고픈데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모세는 40일 동안 금식기도했는데, 죽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방학은 30일 밖에 되지 않는데, 40일 동안 금식기도했는데도 죽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빨리 죽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금식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을 죽는 날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부르짖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부르짖었습니다. “아버지, 저를 불러가 주세요. 이런 세상에서 살기 싫어요. 저를 불러가 주세요.”라고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제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게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게 애원하시듯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주님의 음성을 처음 들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성경에나 있는 일이지,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심으로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순간, 주님이 제게 찾아오셨습니다.

 

평범하게 기도할 때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점잖게 기도하면, 점잖게 끝납니다. 그런 분들은 큰 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했을 때에 불이 내린 것처럼, 성령의 불이 내리는 것을 체험하려면, 목숨 걸고 기도해야 합니다.

결사적으로 기도해보세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불을 받게 됩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광야 길로 계속 걸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근심에 빠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서 어떻게 살지’라고 근심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 때문에 근심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근심할 자유가 내게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염려하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 6장 26~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 때문에 걱정을 가장 많이 합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작을수록 근심을 많이 합니다. 마음속에 근심이 생기는 것은 믿음이 작아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건강한 믿음의 사람은 걱정거리가 많아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걱정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굉장히 건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근심하는 대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들은 걱정 근심을 많이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걱정 근심거리가 생기면, 근심하거나 걱정하는 대신, 하나님 앞에 결사적으로 기도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과 믿음 없는 사람의 차이점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염려거리가 많다고 해도 아무것도, 어떤 것도 걱정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결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염려거리가 축복으로 바뀔 줄 믿습니다. 근심거리가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습니다.”라고 감사하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속에 가득 참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생각이 평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염려거리가 있을 때, 염려하지 마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은혜 받고, 기도하면 믿음이 좋아지고, 기도하면 마음에 평강이 오고, 아주 건강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염려했습니다. 원망 불평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1~3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있을 때, 잘 먹고 잘 살았을 때에 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먹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 와서 굶주려 죽기보다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원망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무서운 원망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마음을 꼬챙이로 찌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고약한 원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온 지 한달 반이 지났으니 애굽에서 가지고 나왔던 양식이 다 떨어졌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메마른 광야에서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생각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세상만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만 바라보고 근심 걱정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믿음의 사람에게 축복하시고, 믿음의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시편 50편 15절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환난을 당할 때, 먹을 것이 없을 때, 사업이 부도났을 때,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살려주세요. 아버지 하나님, 해결해주세요.”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환난에서 건져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환난 때에 기도해서 응답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만 바라보며 걱정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하나님 앞에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응답해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있을 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6장 4~8절에 보면,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에게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린 아이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고, 어린 아이 하나에게 대접하고, 어린 아이 하나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다 예수님께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비밀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안에서 행동할 때,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누구에게 말하더라도 예수님께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에게 대접하더라도 예수님께 대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을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한 것에 대해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9~12절에 보면,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라는 말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것을 능히 지키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것을 지키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것을 지키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여호와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신을 가리켜 ‘하느님’이라고 부릅니다. 여호와 하나님 이외의 하느님은 모두 거짓 신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신입니다. 약속을 지킬 능력도 없습니다. 약속한 적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 옛날 언약과 새 언약으로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말씀하신 것을 하나도 어기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지키신 분이십니다.

만약 성경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도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거짓 신을 왜 믿겠습니까. 그런데 성경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신은 약속을 지킬 힘도 없고, 약속한 적도 없습니다. 사신우상,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우상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사신우상에게 생명이 있습니까. 사신우상이 숨을 쉽니까. 말합니까. 사신우상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 외에는 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 속고 살아갑니다.

 

우상 앞에 빌면, 우상이 복을 줄 수 있습니까.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불이 나면 타버리고, 도끼로 찍으면 쪼개집니다. 그런 우상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 외에는 모두 헛수고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다른 종교인들은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날마다 만나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양식을 책임지십니다.

마태복음 6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먹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이 우리도 기르신다는 것입니다. 새보다 귀한 우리들을 하나님이 먹이시지 않으시고, 기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마태복음 6장 30~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형편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지금 무엇 때문에 걱정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어디가 아픈지 주님은 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형편이 어떤지,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알고 계십니다.

 

고아의 아버지인 죠지 뮬러는 이 말씀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믿음이 아주 강했습니다.

고아원을 운영하는데, 어느 날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지만, 믿음을 가지고 빈 그릇을 차려놓았습니다. 아이들이 빈 그릇을 앞에 두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성경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고 기록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빵 공장에서 불이 났습니다. 빵을 트럭에 실어서 고아원으로 갖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고아들을 먹이셨습니다.

죠지 뮬러의 전기를 보면, 죠지 뮬러가 기도한 것에 대해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으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한 번도 굶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채워주셨다고 합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고 살 수 없을 때,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신 하나님은 우리의 먹고 사는 것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만나를 쌓아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나를 많이 모아서 쌓아놓고 오랫동안 먹으려고 하기 쉬운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6장 19~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남겨두지 말라고 하신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쌓아놓고 살면 좋을 것 같은데, 예수님께서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물질을 쌓아놓으면, 그것이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곡식을 쌓아두고 ‘나는 곡식이 많으니 걱정 없이 살겠구나.’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곡식이 많아도 하나님이 불러 가시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하다고 오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러 가시면, 자다가도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재물을 많이 쌓아두면 오래 살고, 편안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을 바라보며 삽니다.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을 위해 드리므로 하나님 나라에 쌓아두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아침에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6장 13절에 보면,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침에 만나를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6장 21절에 보면,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찌감치 나아가서 자기가 먹을 만큼의 만나를 가져와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침에 만나를 주셨을까요?

첫째, 근면한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늦잠 자지 않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만나를 거두게 했습니다.

 

둘째,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날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들에 나가 만나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이것이 건강에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셋째, 하나님을 경배할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 들로 하여금 아침마다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하고, 날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귀한 양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셨습니다.

 

만나는 언제나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16장 17~18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많이 거둔 것 같은데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것 같은데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사람들 중에 많이 먹는 사람도 있고, 적게 먹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른은 많이 먹고, 아이는 적게 먹었을 것입니다. 식성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따라 먹는 것의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부족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 부족함이 없었을까요? 나누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적게 먹는 사람이 많이 먹는 사람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만나가 남은 사람은 남은 것을 움켜쥐지 않고 모자라는 사람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날마다 나누는 훈련을 하게 하셨습니다. 나누는 훈련, 이것은 매우 중요한 훈련입니다.

 

사도행전 2장 44~45절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성령 충만할 때, 늘 나누는 생활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에 보면,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교회는 지상낙원, 천국과 같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다 나누며 사니까 예루살렘교회에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보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 4절에 보면,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남자의 수가 5천이면, 여자와 아이까지 합하면, 적어도 2만 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재물을 움켜쥘수록 영적으로 메마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항상 나누며 살면, 영적으로 부요해집니다.

그러므로 민족을 복음화하고, 세계를 복음화하려면, 교회는 나누는 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는 부산을 감동시키는 교회가 되기 위해 나누는 생활을 대대적으로 펼칠 계획입니다.

 

북한을 복음화하는 비결은 탈북자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부에서 주는 돈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 나라를 복음화하려면, 앞으로 통일이 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한 가정씩 끌어안아야 합니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들과 같이 나눠먹으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그들을 품어주고, 그들에게 나누어주면, 이 나라가 복음화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려면, 지금부터 탈북자들에게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그 일을 책임졌으면 좋겠습니다. 한 가정에서 한 사람씩 맡아서 책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탈북자들을 100% 복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신학교에 가서 주의 종이 되고, 전도대장이 되면, 장차 북한에 교회를 세우고, 전도하면 북한을 복음화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전날에는 만나를 갑절이나 주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밖에 나가 만나를 가져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평소에는 하루가 지나면 만나가 썩어 냄새났는데, 안식일 전날 만나를 두 배로 가져왔을 때에는 벌레도 생기지 않고, 만나가 썩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기적입니다.

 

출애굽기 16장 5절에 보면,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22~30절에 보면, “여섯째 날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지도자가 와서 모세에게 알리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그들이 모세의 명령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모세가 이르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들에서 그것을 얻지 못하리라 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백성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안식일을 지키는 훈련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먹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3절에 보면,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목적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첫째, ‘복되게 하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은 복 받는 날입니다.

 

둘째, ‘거룩하게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면, 복을 받습니다. 영육 간에 복을 받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잘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 그 사람에게 복이 됩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잘 지키지 않으면, 영육이 병들고 저주 받게 되어 결국 망하게 됩니다.

 

사람은 반드시 쉬어야 합니다. 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안식일에는 세상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쉬어야 합니다.

그 날에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 받으면, 영과 육이 강건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잘 지키는 사람은 생명을 얻고, 복을 받고, 거룩해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항상 안식일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시고, 하나님을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이 무엇이 아까워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마태복음 6장 31~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런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먹을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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