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조상이 된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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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8 16:43 조회3,536회 댓글0건본문
믿음의 조상이 된 야곱
믿음의 조상이 된 야곱
2008년 05월 16일(금요철야)
본문 / 출애굽기 3:6
본문 출애굽기 3장 6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 보면, 이들에 대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히 11:13~16).
자녀들이 훌륭한 사람들이 되면 우리는 “내가 아무개 아버지”라고 하면서 자녀를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나쁜 짓을 많이 했다면, “내가 누구의 아버지”라고 말하기 부끄럽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 자랑스러운 믿음의 사람인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일컬음 받으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아주 기뻐하시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영광스런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을까요?
첫째, 야곱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학생이 학교에 가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면, 이 학생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그 학생의 앞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직장인이 직장에 가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한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길에 들어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반드시 축복하실 것입니다.
농부가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한다면, 그 농부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받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 가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기도했습니다. 식사하기 전에도 기도했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제 길을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데, 알고 보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받는 길에 제가 들어선 것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집무실에 가면,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에는 링컨의 기도하는 소리를 집무실 밖에 있는 직원과 비서들이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흑인들을 해방시키는 일을 성공하게 하시고, 남북전쟁에서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육의 사람, 육신에 속한 사람, 신령한 사람 이렇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의 사람은 아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입니다. 완전히 죄 가운데 살다가 지옥에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육신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긴 하지만, 믿음이 너무 작아서 영의 세력보다 육의 세력이 더 강하기 때문에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술 마시고, 도둑질도 하면서 육의 사람과 비슷하게 살고 믿음이 너무나도 작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신령한 사람은 육의 세력보다 영의 세력이 더 강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서 변화 되어 주님의 모습을 아주 닮아 거룩하게 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큰 믿음의 사람입니다.
에서는 육의 사람이고,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육신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지만, 영의 세력보다 육의 세력이 더 강한, 육신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이 젖먹이처럼 매우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 육신에 속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봅니다. 남이 자기보다 잘되고 잘사는 것, 남의 집 아이가 좋은 학교에 가면 배가 아파 못 견딥니다. 항상 사람들과 화목하지 못하고, 밤낮 분쟁합니다. 다투기 잘하고, 분쟁을 잘합니다. 그만큼 인격이 성숙하지 못하고, 성격이 변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사람만 따라 행동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파벌이 생기고, 분쟁이 생깁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세상에 나가면, 불신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은 짓을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기가 예수 믿는 것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예수 안 믿는 사람인척 행동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별 짓을 다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교인이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회사에서 중역으로 있는 분이 우리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분은 저를 만나면 반가워하고, 교회생활을 즐거워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하며 은혜 받는 것이 즐거워 사장님을 전도하려고 사장님께 우리 교회를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이미 교회 다니고 계셨고, 놀라운 것은 장로님이었다고 합니다. 이분은 십 수 년 동안 회사에서 일하며 사장님이 예수 믿는 사람인 것을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불신자들과 똑같이 행동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욕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도 처음에는 에서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에서가 사냥하고 돌아왔을 때, 배고파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배고픈 에서가 그 팥죽이 얼마나 먹고 싶었겠습니까. 그래서 팥죽 한 그릇을 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장자의 명문을 자신에게 팔라고 합니다. 대신 팥죽을 준다고 합니다. 에서는 배가 고픈 나머지, 장자 명문이 뭐 대수냐며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장자 명분을 우습게 생각하고, 팥죽 한 그릇과 바꿔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삭이 죽을 날이 가까워오니까 장자에게 모든 축복을 해주고,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사냥해서 별미를 만들어 오면, 그것을 먹고 기쁨으로 모든 축복을 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야곱은 집에 있는 짐승을 잡아 별미를 만들고, 자신이 에서인 것처럼 꾸며서 모든 장자의 축복을 받아버렸습니다. 형이 받아야할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 형제이지만, 원수가 되고 맙니다. 이들의 후손인 에돔 족속과 이스라엘 족속도 역시 하나 되지 못하고, 계속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가 원수가 된 것입니다.
한 피를 가진 형제가 왜 원수가 되었을까요? 욕심 때문입니다. 또한 이기심 때문입니다. 육의 사람은 대부분 욕심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육신에 속한 사람도 욕심에 끌려 다닙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를 죽이려 하는 형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갈 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처럼 생명의 위기가 와서 앞이 깜깜하고, 두려움이 생기고, 마음이 답답할 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하나님에게 멀리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왔을 때, 어려울 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낙심될 때, 절망이 올 때, 죽고 싶을 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살 길이 열립니다.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무릎 꿇는 사람은 해결됩니다.
둘째,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해주시기를 구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무엇이 가장 큰 축복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신실하십니다. 완전하신 분입니다.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함께해주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을까요. 하나님이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시고, 나와 함께해주시며,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고 하면,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다윗이 전쟁 때마다 승리했던 비결은 하나님이 함께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할 때 승리한 비결은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무엇을 하든지 형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이 함께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1장 22절에 보면,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아브라함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26장 28~2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비멜렉과 군대 장관 비골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하심을 분명히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창세기 28장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보면,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얻지 못하는 이유는 구하지 않고, 엎드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간구해도 얻지 못한 사람은 기도를 잘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해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면서 기도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자신이 가책을 느끼는 것이 없이 아름답게 믿음으로 산 사람은 담대함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다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 앞에서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때 담대함을 얻게 되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릎 꿇는 것보다 어떻게 살면서 기도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기도하셔야 하나님이 책임지고 응답하십니다. 넘치는 복을 주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구하는 것마다 주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구하지 않아도 주십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주십니다. 그런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야곱은 하나님 앞에 선한 뜻을 품고, 믿음의 결단을 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의 마음가짐이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계획을 하고 있고, 어떤 뜻을 품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겉만 알고, 속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을 들여다보십니다. 우리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계획을 하고,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어떤 뜻을 품고 있는지,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고 계시기 때문에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악한 뜻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악한 생각을 한다든지, 악한 계획을 세운다든지, 악한 뜻을 품을 품으면 안 됩니다.
에서가 야곱을 죽일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만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에서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악한 뜻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악한 생각을 하고, 악한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아무리 화가 나고, 속상하고 괴로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악한 마음과 악한 뜻을 품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한 마음과 뜻을 품으면,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설 수 없습니다.
야곱은 부족한 것 같아도 선한 뜻을 품었습니다. 선한 뜻을 품고, 믿음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창세기 28장 20~22절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 앞에 서원하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외의 다른 신, 다른 우상을 절대 섬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내가 기둥의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선한 뜻을 마음에 품고 결단하여 하나님 앞에 입을 열어 기도했습니다.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야곱이 그런 뜻을 품고 믿음의 결단을 내리고 하나님 앞에 함께 해달라고 기도할 때, 함께해주시기만 하겠습니까, 구하지 않은 축복까지 주시지 않았을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을 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뜻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좋은 마음, 좋은 생각, 좋은 뜻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순간 좋은 생각, 좋은 뜻을 가지고 마음관리 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다니엘도 왕이 주는 포도주와 진미로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하고 뜻을 정했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결단입니다. 우상 앞에 절을 하고 주는 음식을 먹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런 다니엘을 어찌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함을 주시고, 꿈을 해몽하는 특별한 은사를 주셔서 그를 총리가 되게 하셔서 나라가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총리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그렇게 죽을 때까지 총리로 쓰임을 받다가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기로 결정하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에스더 또한 자신의 민족을 구하기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라고 하며 금식기도를 하고,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가 죽을 각오를 하고 마음에 결심을 한 순간 하나님이 그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저울질해보셨을 것입니다. 에스더가 그런 뜻을 품었을 때, 하나님께서 감동받으셨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선한 뜻, 선한 결단, 선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서 바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소원을 가지고 말할 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얼마나 큰 축복을 하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자 하는 결단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선한 마음, 선한 뜻을 가지는 것은 축복받는 그릇을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한 뜻은 되도록 크게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능력, 돈, 재산, 학벌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선한 뜻을 품어도 뜻을 100% 이루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뜻을 품었던 사람들은 다 축복받았습니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하고, 기둥으로 세운 돌이 성전이 될 것이라고 하고 또 하나님이 주신 것의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다고 했는데, 야곱이 성전을 지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100% 실천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거부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하시는데 야곱 때문에 외삼촌 라반이 부자가 되고, 야곱도 부자가 되어 떼를 이룬 가축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말씀을 듣는 순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뜻을 품고 결심할 때, 우리는 그 뜻을 100% 실천할 수 없지만, 복을 받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셔서 자기가 성전을 지어서 바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이 모아놓은 재산으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야곱과 다윗과 에스더와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은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서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선한 뜻을 크게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웨슬레는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런 큰 뜻을 품고, 얼마나 크게 쓰임 받았는지 모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민족을 복음화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면서 우리 민족을 다 구원받게 하는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꿈을 가진 것으로 인해 받은 축복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족한 것을 주님은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한 뜻을 품고, 큰 꿈을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 한다면 주님은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넷째, 야곱은 항상 하나님만 믿고 의지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온 식구들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갈 때, 맞은 편에서 형 에서가 군대를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죽일 결심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악한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였으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23~28절에 보면,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의 목숨을 건 끈질긴 기도는 야곱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끈질긴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어느 과부가 그 도시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장에게 찾아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얼마나 간청하는지, 과부가 너무 자주 찾아와서 재판장에게 간청하니, 재판관이 귀찮아서 할 수 없이 들어줘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야곱과 이 과부처럼 절대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기어코 응답을 받아내는 믿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 오실 때가 오면 다들 기도생활을 잘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다가 그만두고 포기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끈질긴 기도를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형통하는 복을 받게 되고, 전화위복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요셉을 잃어버렸는데,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 야곱의 인생 말년에 왕처럼 대접 받으며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살다가 자손들을 축복하고 떠납니다. 야곱은 마지막 때에 호강하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야곱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훌륭해지고 더 은혜로운 선지자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야곱의 모습을 보면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는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곧 야곱입니다. 이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사람으로 겨루어 이겼다’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후손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나라도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씨름에서 이긴 사람은 이기지 못할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기도로 승리하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야곱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 믿음이 부족해서 육신에 속한 사람의 모습이 남아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족할지라도 항상 하나님 앞에 선한 뜻을 품고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선한 뜻을 품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항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끈질기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받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반드시 축복 받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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