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이긴 요셉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8 13:56 조회3,273회 댓글0건본문
시련을 이긴 요셉
시련을 이긴 요셉
2010년 12월 17일(금요철야)
본문 / 창세기 39:1~6
요셉은 야곱이 라헬을 통해 낳은 아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7년 동안 아주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것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7년 동안 봉사한 후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등이 없었기 때문에 해가 지면 어두웠습니다. 신방에 들어가서 자고 일어나 보니 옆에 있는 사람이 라헬이 아니라 라헬의 언니 레아였습니다.
창세기 29장 17~18절에 보면,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레아는 시력이 좋지 않아서 잘 보지 못했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항상 찌푸리고 있었을 것이고, 모양새도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헬은 건강하고 아리따웠습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야곱은 “어떻게 저를 속일 수 있습니까.”라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외삼촌 라반은 “1주일 동안 더 봉사하면, 라헬도 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1주일 후에 라반은 라헬도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7년 동안 더 봉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은 자기가 원하지도 않는데, 두 여자와 함께 살게 되었고, 후에는 시녀들까지 포함하여 네 명의 여자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야곱이 가장 사랑한 여인인 라헬을 통해 요셉을 낳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레아도 사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야곱은 라헬만 사랑했습니다. 레아는 얼굴도 변변하지 않고, 시력도 좋지 않았지만, 아이를 잘 낳았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참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남쪽 지방과 섬 출신의 목회자가 서울에서 목회를 잘하는 분이 많습니다. 반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인 저를 부산에 와서 목회하게 하시니 얼마나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라헬처럼 아이를 낳지 못하면, 현대인들은 병이 있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29장 3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아의 태를 여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를 여시면 아기가 생기고, 태를 열지 않으시면 아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내 마음대로 아기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여셔야 아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창세기 30장 22~24절에 보면,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기를 낳지 못하던 라헬도 하나님께서 태를 여시니까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절대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열어주시지 않으시면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아기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아기를 낳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여자 집사님은 40대 중반이고, 아이가 세 명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를 더 낳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임신중절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기적처럼 임신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집사님께 “이 아기는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자녀니까 낳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늦둥이로 인하여 그 가정에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고, 이전보다 더 행복해졌습니다.
40대 중반의 어느 여자 집사님은 아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자신이 아기를 낳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임신하게 되어 딸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여시면, 평생 아기를 낳지 못하는 줄 알았던 사람도 아기를 낳게 됩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특별한 자녀를 주시려고 하실 때에는 대부분의 경우 늦게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쉽게 낳는 가정에서는 특별한 사람이 생기지 않고, 오랜 세월이 걸려 힘들게 낳은 자녀 중에 특별한 인물이 많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자녀 얻기를 그토록 원했지만, 아브라함이 100세,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인간적으로 보기에는 100% 불가능해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부부를 통해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동안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수십 년 동안 기도했을 것입니다.
사무엘의 경우에는 브닌나라는 여자는 아기를 잘 낳는데, 한나는 아기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나가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삼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의 부모가 아기를 낳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노아의 아내를 통해 삼손을 낳게 하시고, 삼손을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이 네 명의 여자와 함께 살았는데, 그 중의 세 명은 아기를 잘 낳았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아기를 낳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뒤늦게 라헬에게 아기를 낳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이라는 특별한 아들을 라헬에게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특별한 자녀를 주시려고 하실 때에는 믿음의 여인들을 통해 낳게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중에도 사라를 통해 낳은 아들 이삭은 믿음의 조상이 되고, 훌륭한 인물이 되었지만, 하갈을 통해 낳은 아들 이스마엘은 이방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똑같이 아브라함의 아들인데, 어머니가 믿음의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자녀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남자도 중요하지만, 여자가 더욱 중요합니다. 여자가 얼마나 믿음의 사람인가에 따라 자녀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자녀를 주실 때에는 믿음의 여인을 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여인으로 하여금 기도를 많이 하게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은혜 받게 되고, 은혜를 받으면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여인을 만드신 후에 그에게 자녀를 주셔서 아주 위대한 인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이를 늦게 주시는 목적은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부르짖고 기도하면, 그 기도가 쌓입니다. 기도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하나님께서 큰일을 행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위대한 인물을 주시려고 하실 때에는 기도를 쌓게 하십니다. 기도할 시간을 많이 주시기 위해 자녀를 늦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이 기도한 후에 낳은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특별히 사용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자녀들을 특별히 사용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그릇이 큰 사람이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습니다. 사랑의 그릇이 큰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김하중 장로님이 쓰신 〈하나님의 대사〉라는 책을 읽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장로님은 오래 전부터 중국을 사랑하고, 중국을 위해 기도하고, 중국에 대해 연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지도자들을 위해 축복기도하셨습니다. 그렇게 중국을 위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많이 쌓아놓으셨습니다.
그 후에 장로님이 주중국대사관 대사로 가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중국 지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우리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게 하셔서 장로님이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한국 사람들이 어디서든 모일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 중국에 있는 교회들이 부흥되게 하고, 많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제가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 기도가 달라졌습니다. 요즘은 북한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중국을 위한 기도도 달라졌습니다. 중국의 대륙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중국의 지도자들을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제 기도가 얼마나 빨리 응답되는지, 중국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습니다. 중국의 종교 담당 장관이 저를 초청했습니다. 중국에 와서 집회를 인도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교육시켜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중국의 어디에서 제 마음대로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중국에서 저를 초청했습니다. 중국의 도시마다 다니며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기 시작하니까 응답이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세상의 권력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재간이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는가, 사랑하는 마음의 그릇이 얼마나 큰가를 보시고, 사랑하는 마음의 그릇이 큰 사람들을 크게 들어 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게 쓰임 받는 사람들을 보면, 선교지를 사랑하고, 그곳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곳에서 매우 열심히 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쓰시려는 사람을 늦게 태어나게 하시는 것은 그의 어머니로 하여금 기도를 많이 쌓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자녀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해서 낳은 자녀니까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게 하셔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어도 성령 충만함을 받고, 사랑의 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확실한 열매는 사랑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으신 분들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운 사람들을 위해 축복기도하고, 그들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았습니다. 창세기 37장 3절에 보면,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많이 받은 요셉을 통해 크게 일하셨습니다.
어느 날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 창세기 37장 5~11절에 보면,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의 꿈은 요셉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아주 특별한 꿈입니다. 계시적인 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 꿈을 꾼 날은 요셉에게 시련이 시작된 날입니다.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죽을 뻔한 위기를 겪고,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는 시련이 요셉에게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요셉이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요셉은 서른 살에 애굽의 총리가 될 때까지 13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 아마 흥분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삼상 16:13). 아마 굉장히 감격했을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자신을 왕으로 삼을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에게 기름을 부었으니, 다윗이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은 그 날은 다윗에게 시련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다윗이 30세에 왕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사울로부터 미움을 받아 밤낮 도망 다녀야 했고, 하룻밤도 편안히 잘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려는 사람에게 큰 시련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계획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시련을 주시는 데에는 시련을 통해서 신앙과 인격을 온전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지만, 그렇다고 그 날부터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표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먼저 시련을 겪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큰 계획을 가르쳐주시고 축복해주셨는데, 이상하게 잘되는 일이 없고, 남들보다 고생을 많이 하게 되어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셨는데, 나에게 이렇게 고생시키는 것을 뭐냐?’라고 의심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의심을 완전히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특별히 크게 쓰시려고 하실 때에는 그냥 쓰시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큰 시련을 겪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시련을 통해 우리의 신앙과 인격이 온전해져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아무리 큰 시련이 찾아와도 믿음으로 시련을 이깁니다. 하나님이 함께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시련이 올 때는 하나님이 내게서 멀리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이 멀리 계시고, 외면하고 계신 것이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절대 그런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아무리 큰 시련이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인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형통함으로 나타납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서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형통하게 하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인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것은 좋지 않은 일인데, 하나님께서는 감옥에서도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감옥에 들어간 것도 하나님이 함께하는 가운데 일어난 것이지, 하나님이 요셉을 떠났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감옥에 들어가는 어려운 일도 당하게 하시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요셉으로 하여금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감옥은 요셉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보면, 떡 굽는 관원장은 사형을 당하고,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었습니다.
그러니 요셉도 죽을 수 있습니다. 요셉은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당한 시련 가운데 감옥에 들어간 것이 가장 큰 시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는데, 지금은 이전보다 더 어려운 일을 당하여 절망 가운데 있는 분이 계시다면, 고난이 끝날 때가 가까웠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시련은 특별히 크고 어렵지만, 시련이 끝날 때가 가까웠다는 사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기뻐하세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져서 마치 절벽의 끝에 서있는 것 같다 해도 절망하지 마시고, 시련의 끝이 다가왔음을 믿으시고, 입으로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공군장교로 훈련을 받을 때, 처음에는 아침마다 맨몸으로 뛰었습니다. 그것도 힘들어서 헉헉거렸습니다. 며칠 후에는 총을 들고 뛰었습니다. 그 후에는 철모를 쓰고, 허리에 물통을 차고 뛰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완전무장을 하고 뛰었습니다. 훈련이 끝날 무렵에는 완전무장을 하고 대전에서 계룡산까지 뛰어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제일 힘든 과정은 마지막입니다. 과거보다 점점 더 어려워져서 죽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가운데 있는 분은 오히려 기뻐하세요. 졸업할 때가 가까웠습니다.
요셉을 보세요. 감옥에 들어가서 어려운 시련을 통과한 후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요셉은 참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시련을 잘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겼습니까?
첫째, 요셉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큰 시련이 와도 우리는 요셉처럼 낙심하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낙심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첫째,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죽고 사는 것은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고, 환경에 달린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사람입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은 시련이 오면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셨으므로 시련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통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해도 사람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시련을 허락하셨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시련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시면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시련이 오면 엎드립니다. 기도합니다. 그래서 시련이 와도 낙심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믿음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어려움을 당하지만, 모든 것이 축복으로 바뀌리라, 이로 인하여 더 좋은 일이 생기리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 노인이 아들과 둘이 살았는데, 그 집의 재산이라고는 말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말이 도망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에 와서 “아이고, 안 됐네요.”라고 말하자, 이 노인은 “안 됐는지, 잘 됐는지 어떻게 알아. 두고 봐야 알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도망갔던 그 말이 야생마 한 마리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에 와서 “잘 됐네요.”라고 말하자, 이 노인은 “잘 됐는지, 안 됐는지 어떻게 알아. 두고 봐야 알지.”라고 말했습니다.
노인의 아들이 야생마를 길들인다고 야생마를 타고 놀다가 야생마가 뛰는 바람에 아들이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에 와서 “아이고, 안 됐네요.”라고 말하자, 이 노인은 “안 됐는지, 잘 됐는지 어떻게 알아. 두고 봐야 알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중국에 전쟁이 나서 젊은 사람들이 다 끌려가는데, 이 아들은 다리가 다쳤으니 끌려가지 않았습니다.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동네에 젊은이는 이 아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에서 제일 부잣집의 예쁜 딸과 결혼했다고 합니다.
당장은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으로 바꾸시면, 놀라운 축복이 우리에게 임할 줄 믿습니다.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극한 가난 속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주 어려우니까 죽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저는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 축복을 받았으니, 시련이 끝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 후에는 이전보다 더 어려워졌습니다. 대학교에 갔을 때에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때 입시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밤 12시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다녀오면, 저녁에 또 다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4년 동안 그렇게 살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주일에 교회 가는 것 외에는 여유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축복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대학교 졸업식 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을 때, 주님은 제게 “내가 너를 그렇게 묶어놓지 않았다면, 네가 내 종이 될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탈선합니까. 쓸데없는 짓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저를 묶어놓으신 것입니다.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도록 저를 묶어놓으신 것입니다.
가난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입시생을 가르치느라 나의 시간이 묶여있었던 것도 나로 하여금 딴 짓 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가난하게 하신 것도 감사하고, 쓸데없는 짓을 못하도록 시간을 묶어놓으신 것도 감사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축복이었습니다.
많은 시련을 겪게 되니 자연히 기도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다 보니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많아졌습니다.
그것이 제가 평생 목회하는 데 복이 되었습니다. 많은 영적 체험과 응답 받은 체험과 모든 것이 제게 평생 복이 되었습니다.
어떤 곤경에 처해도 낙심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기회는 옵니다.
내일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죽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한,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대 낙심하지 마세요. 어려움이 왔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세요. 낙심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둘째, 요셉은 목숨을 걸고 경건을 지켰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많이 당하면, 시련 가운데서 ‘될 대로 되라’라고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에도 목숨 걸고 단호하게 물리치며 경건을 지켰습니다. 요셉은 마귀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했고, 죄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싸워 이기는 사람, 목숨을 걸고 경건을 지키는 사람을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크게 들어 쓰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 가운데 있다고 해서 여러분도 아무렇게나 살지 마세요. 목숨을 걸고 경건을 지키세요. 하나님께서 감동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크게 들어 쓰십니다.
셋째, 요셉은 어떤 일이 있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형님들에 대해서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간교한 짓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신앙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줄 믿습니다.
원망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때로 시련을 주시지만,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절대 낙심하지 말고, 원망하지 마세요.
많이 원망하면, 받은 은혜를 다 잃어버리고, 받을 축복을 차버리게 됩니다. 원망하면 복이 떨어져나갑니다. 그러므로 절대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많이 원망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원망하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넷째, 요셉은 용서했습니다.
요셉은 마음속에 증오심이 생길 수도 있는데, 증오하지 않고 용서했습니다.
창세기 45장 4~8절에 보면,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은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자신이 형님들에 의해 노예가 되었지만, 형님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자기를 애굽으로 보내셨고, 형님들은 심부름을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형님들을 미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창세기 50장 15~21절에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요셉은 신앙과 인격이 뛰어났습니다. 요셉은 형님들보다 더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시련을 통해서 뛰어난 신앙과 인격을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시련을 겪으신 분들은 신앙과 인격이 온전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용서해도 되고, 용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용서해야 됩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용서해야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용서하는 것이 억울하게 여겨지고, 손해 보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용서하며 살면, 가정에도 천국이 이루어지고, 세상도 천국처럼 됩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악을 악으로 보복하는 것이 시원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용서하라고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43~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인격이 온전해지면,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되고,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위해 오히려 축복기도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요셉은 성공한 후에도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교만하지 않은 것 같아도 교만해진 증거가 나타나면, 교만해진 것입니다.
교만해진 증거는
첫째, 감사가 메마릅니다.
감사헌금을 1년에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십일조헌금은 드리는데, 감사헌금은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약해지는 것은 교만해진 증거입니다. 감사가 점점 많아져야 합니다. 세월이 갈수록 감사가 점점 커져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교만해지면 감사가 메마릅니다. 히스기야 왕이 교만해지니까 죽을병에서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기도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기도생활을 잘했는데, 요즘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잘된다고 말합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수입이 많다고 말합니다. 자기 힘과 자기 공로로 잘되는 줄 알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잠시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은혜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예배를 열심히 드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솔로몬이 교만해지니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없어지고, 밤낮 술이나 마시며 타락한 생활을 하다가 우상숭배까지 했습니다. 교만해지면 그렇게 됩니다.
요셉은 끝까지 변함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드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시련을 이기면, 큰 축복이 있습니다. 시련을 이기면, 큰 그릇이 됩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겪는 것을 괴로워하지 마시고, 시련을 겪는 것을 저주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시련은 우리의 신앙과 인격을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하신 분들은 시련을 잘 이기시기 바랍니다. 요셉처럼 이기시기 바랍니다. 시련을 이기기만 하면,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련을 이기기만 하면,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큰 그릇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요셉으로 하여금 어떤 시련도 이기게 하시고, 모든 것이 전화위복되게 하셨습니다.
30세 이후의 요셉의 삶을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요셉이 받은 복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큰 시련에 부딪쳐있는 분들은 이제 시련을 졸업할 때가 가까웠습니다. 시련에서 졸업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하시고, 크게 들어 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큰 시련을 이기면 큰 그릇이 되고, 큰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