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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함께 하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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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5 17:20 조회5,3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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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함께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

2004년 03월 14일(주일예배)

본문 / 창세기 39:1~6

 

주님을 만난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으로, 그 사람 안에 성령이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심을 믿습니까?

 

구약성경에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믿음의 조상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셔서 그들을 축복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많은 복을 받기를 원하지만, 그 중에 가장 귀한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여주시는 복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들에게는

첫째, 환난과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에게도 때로는 환난과 고통이 있습니다.

본문 창세기 39장 1절에 보면,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 번째 아들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야곱은 여러 아들 중에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힐 정도로 특별히 그를 사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요셉을 사랑하셨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요셉의 꿈을 통해 그가 장차 큰 인물이 되어 귀하게 쓰임 받게 될 것과 장차 받을 축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꿈은 보통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보여주시는 계시적인 꿈이었습니다. 아마 요셉은 그 꿈을 꾼 후 큰 비전과 기대를 가지고 기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현실은 꿈처럼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로 인해 요셉은 형들의 시기질투를 받아 노예로 팔렸습니다. 어찌 보면 그의 꿈과 정반대의 불행한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옛날에 노예는 사람이면서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소나 말과 같은 짐승처럼 죽어라고 일만 하다가 죽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재산목록 중의 하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에게도 시련이 있다”라는 중요한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실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심지어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29).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번 택하셨으면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면 영원히 사랑해주십니다. 인간은 조석으로 변하고, 기분에 따라 변하며, 환경에 따라 변하는,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변덕스러운 존재이지만,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에게 왜 환난과 시련이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에게 오는 시련은 믿음의 시련입니다. 약한 믿음을 강하게 하고, 작은 믿음을 큰 믿음으로 만들고, 부족한 믿음을 온전한 믿음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의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게도 믿음의 시련은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시련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에게도 있으며,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사람에게도 믿음의 시련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형통하고 잘 될 때뿐만 아니라 환난과 시련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한 젊은이가 꿈에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가 하늘나라를 구경하던 중 각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를 그려놓은 모래밭을 발견했습니다. 젊은이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모래밭을 유심히 살펴보던 중, 가장 어렵고 힘들던 시기라고 생각되던 곳에서 갑자기 발자국이 하나밖에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하나님, 어째서 제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저 홀로 내버려두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들아, 난 언제나 너와 함께 있었단다. 너와 동행하다가 네게 고난이 닥쳤을 때에는 내가 너를 업고 갔다. 그 발자국은 내 발자국이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이 잘 되고, 편안할 때에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는 것 같고, 함께하시는 것 같지만, 뭔가 일이 잘 되지 않고, 괴로울 때에는 하나님이 멀리 떠난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절대로 저와 여러분을 홀로 두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가스로 많은 사람들이 독살당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독가스실로 끌려가 한 번에 수천 명씩 죽어나갔습니다. 심지어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직물을 만들고, 사람의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생명이 억울하게 죽어나가는 현장에서 유대인들이 눈물을 뿌리며 외친 절규는 바로 “하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 왜 이런 사건을 허용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후에 연합군이 이 수용소를 탈환하고 발견한 것은 수용소 벽에 쓰여진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라는 글귀였습니다. 지옥과 같은 저주스러운 곳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진심으로 찬양한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참으로 가슴 뭉클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억울하게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는, 위대한 믿음을 저와 여러분도 갖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43장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를 구속하고,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고, “너는 내 것이라”라고 거듭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가운데서도 때때로 우리가 물을 건너야 할 때도 있고, 불을 통과해야 할 때도 있음을 볼 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때로는 물의 시험을 당하고, 불의 시험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평안할 때보다 큰 환난과 시련이 있을 때,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는 것을 더 많이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큰 위기 앞에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 고난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펴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시며, 큰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체험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생애를 보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모두 말로 다 할 수 없는 엄청난 환난과 시련을 통과한 체험적인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했습니다(약 1:2~4).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환난과 시험이 와도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합니다. 믿음의 시험은 또 다른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범사에 형통합니다.

본문 창세기 39장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을 노예로 산 보디발은 요셉이 다른 노예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모든 소유를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그 주인의 집과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2:2~3).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저와 여러분도 아브라함이나 요셉처럼 복의 근원이 되어 많은 사람을 복 받게 하는 축복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할 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범사에 형통함을 체험하며 살 때라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큰 역사는 일어나지 않아도, 크고 작은 일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며 살 때,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평화롭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세계 기독교사에서 거인의 발자취를 남긴 요한 웨슬레는 임종을 맞이할 때, 두 팔을 높이 들고,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큰 목소리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참으로 멋진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범사에 형통하는 축복을 받은 요셉에게 또 다른 시련이 있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요셉을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요셉의 나이가 20대 후반의 건장한 청년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으나 가정 총무로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도 먹고, 하나님을 잘 믿었으니 그의 얼굴이 얼마나 은혜로웠겠습니까.

창세기 39장 7절에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을 하며 동침하기를 청했습니다. 이때 요셉은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하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창 39:8~9).

그러나 이 여자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39장 10절에 보면,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복을 받은 사람들이 항상 지켜야 하는 것은 거룩입니다.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여인의 전형적인 모델입니다. 오늘날 이와 비슷한 여자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언제나 그 시대의 가장 위험한 요소는 성적 타락입니다. 오늘날 성적 타락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성연애의 증가는 정상적인 가정을 파괴하고 나라와 민족을 망하게 하는 죄악 중의 가장 더러운 죄악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이유도 성적 타락입니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소망은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경건한 기독교인들에게 있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희망이요, 소망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한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절대로 이 나라를 버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타락해도 우리나라만은 복음의 횃불을 높이 들고 전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나라가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는 귀한 복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성실해야 합니다.

 

창세기 39장 13절 이하에 보면, 보디발의 아내는 자신의 욕망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분노하고 복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요셉에게 자신과 동침하려고 했다는 누명을 씌워 요셉을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39장 21~23절을 보면, 요셉은 감옥에서도 인정 받아 간수장으로부터 옥중 죄수를 관리하는 중요한 일을 맡아 제반 사무를 다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가 감옥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범사에 형통했습니다.

 

그 후 요셉은 감옥에 있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여 꿈쟁이로 알려지게 되었고, 드디어 애굽 왕 바로의 꿈을 완벽하게 해몽하므로, 그의 출중한 지혜가 인정을 받아 애굽의 총리로 발탁되었습니다.

 

셋째, 시련과 문제도 전화위복의 기회가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에게 오는 시련은 반드시 전화위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문제가 결코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시련을 겪고 있습니까? 어떤 문제 앞에 놓여 있습니까? 결단코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에게 오는 시련과 문제는 반드시 전화위복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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