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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6장

아브라함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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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01 23:21 조회3,2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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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아픔

 

아브라함의 아픔

2005년 04월 08일(금요철야)

본문 / 창세기 16:1~6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 22:17)”고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됩니다.

 

본문 창세기 16장 3절에 보면,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10년이 되었는데도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번성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백 세가 되어서야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백 세가 된 때가 하나님의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고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에 아들 이삭을 주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주십니다.

 

사라가 90세가 되었으니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100%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25년이 지난 후에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때가 하나님의 때입니다.

결혼한 지 25년이 지났음에도 아기를 낳지 못한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하나님께서 25년 후에 자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면 어떠했을까요.

하나님께서 25년 후에 자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면, 하나님께서 자손을 주시기까지 기다리는 25년 동안 아브라함은 아예 체념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를 말씀하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지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금방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집사님 한 분이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회사에서 일하기보다 학교에서 일하고 싶어 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이 일하기 원하는 학교의 이사장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사장은 그 집사님에게 일단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이 집사님은 자신이 일하는 학교에서 일하게 되어 기분이 좋은 나머지 그 동안 자신이 일하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자신이 하던 일을 다 정리했습니다.

이 집사님은 학교에서 곧 연락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학교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 집사님은 졸지에 직장을 잃고 많이 고생했습니다.

 

기도해서 응답을 받으면 마치 모든 것이 다 된 것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는데, 하나님의 때를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는 기다려야 합니다. 기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으니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사인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사인을 보여주십니다. 사람을 통해 사인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사건을 통해 사인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사인을 받으면, 그때부터는 밀어붙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기 때문에 모든 것이 순탄하게 됩니다.

 

자신의 욕심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에는 그대로 될 것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된 것처럼 말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된 것처럼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그대로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자손을 주시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사라는 임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잘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사라는 어떻게 해서든 자녀를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사라는 10년을 기다렸으니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때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때, 가장 적당한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이루어지는 것보다 가장 좋은 때, 가장 적당한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때, 가장 적당한 때를 아십니다.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과거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완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라는 이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 참고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사라는 조급하게 생각하고 욕심을 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자신의 생각대로 자식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잘 참아야 합니다. 끝까지 잘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에게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삼상 10:8)”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않자 사울은 사무엘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 사울이 번제를 드린 후에 사무엘이 길갈에 왔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 받았습니다. 사울의 믿음은 불합격이었습니다.

 

물건을 잘 만들어놓고 마지막에 물건을 찌그러뜨리면 그 물건은 팔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만큼 참을 수 있습니다. 믿음만큼 기다릴 수 있습니다. 끈기를 가지고 끝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하실까를 생각하지 마세요.

오직 은혜 받는 일에만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하시든 마냥 좋습니다.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봉사하며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따라 살아가세요. 이렇게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예수님께서 언제 오셔도 상관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만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미혹될 수 있습니다. 이단에 빠질 수 있습니다.

 

본문 창세기 16장 2절에 보면,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라가 나이가 많아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사람의 방법을 썼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사라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제안을 왜 거절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아브라함과 같은 부자는 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의 문화요 풍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시대의 사람들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였지만, 많은 여자를 거느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사라 뿐이었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그만큼 절제를 잘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당시의 문화와 풍습에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3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세 가지 적이 있습니다.

첫째, 세상 풍조입니다.

세상 풍조는 타락한 세상 사람들의 습관을 의미합니다. 세상 풍조가 아무리 좋아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 풍조를 따르면 안 됩니다. 주관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즉 마귀입니다.

셋째, 육체의 욕심입니다.

사람은 먹고 싶어 합니다. 보고 싶어 합니다. 가지고 싶어 합니다. 말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육체의 욕심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다스리면 육체의 욕심은 유익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고, 육체의 욕심에 끌려가면, 짐승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여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은 마귀의 종 노릇 하지 않습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습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거나 마귀를 따르거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거룩하게 사는 것은 구별되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때에는 전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전쟁터에 간 남자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남자의 수는 적었고, 여자의 수는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일부다처제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살았던 시대의 풍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시대의 풍습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오직 사라만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당시의 풍습으로 보면, 아브라함이 하갈을 첩으로 받아들인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라가 제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허락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허물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만이 아는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셔서 침묵하시고 내버려두실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잘못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때리신다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비하시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살아있습니다.

 

본문 창세기 16장 4절에 보면,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녀가 없다가 자녀를 가졌으니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그러나 기쁨은 잠시, 이로 인해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갈은 자신이 임신함을 알고 자신의 주인을 멸시했습니다. 하갈이 자신의 주인을 멸시했다는 것은 아주 교만해졌다는 의미입니다. 하갈은 자신의 분수를 알지 못하고 교만해졌습니다.

 

본문 창세기 16장 5절에 보면,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16장 8~14절에 보면,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21장에 보면, 하나님의 때가 되어 사라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사라가 아들을 낳았을 때, 사라의 나이는 90세였고,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였습니다.

그런데 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창세기 21장 8~9절에 보면,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는 이스마엘이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아이가 하나뿐이었으니 얼마나 사랑을 받았겠습니까.

그런데 이삭이 태어난 후에는 모두 이삭을 사랑하니 이스마엘이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혔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히는 것을 사라가 보았습니다. 창세기 21장 10~절에 보면,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신의 욕망은 충족되었을 때만 좋습니다. 반드시 고통이 따릅니다. 솔로몬은 술을 마시며 쾌락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술을 마실 때에는 좋지만, 술을 마시고 나면 몸이 괴롭습니다. 몸이 상합니다. 건강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도 손해를 봅니다.

 

육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하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육신의 욕망은 절제해야 합니다. 육신의 욕망은 절제할수록 좋습니다. 육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솔로몬은 1천 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쾌락은 잠시 뿐이고, 고통은 오래 지속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쾌락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세상의 쾌락을 따라가고 육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면, 잠시 좋을 뿐입니다.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절제하느라 겪는 고통이 가장 가벼운 고통입니다. 절제하려고 하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러나 절제하느라 겪는 고통이 고통 중에서 가장 가벼운 고통입니다.

절제하지 못하고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면, 이로 인해 더 큰 고통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절제하는 것이 복입니다.

 

창세기 21장 12~13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21장 16절에 보면,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사람들이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원한을 가진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땅에 전쟁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비극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22~절에 보면,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약속의 자녀와 육체의 자녀가 있습니다. 약속의 자녀는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태어난 자녀입니다. 약속의 자녀는 믿음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이 없습니다. 믿음에 따라 태어나는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믿음은 보배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강하면, 팔레스타인이 종 노릇 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이 강해지면, 이스라엘이 종 노릇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영적 전쟁을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강해지면, 마귀는 우리의 종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약해지면, 우리는 마귀의 종 노릇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마귀의 종 노릇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마귀의 종 노릇을 하면 망합니다.

 

아브라함은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고 이들을 내쫓은 것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죄를 범하면 죄책감을 느낍니다.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복해서 죄를 범하면, 마음이 무디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죄를 범하면서도 쾌감을 느낍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아 성령이 역사하면 자신의 허물과 죄를 깨닫습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영안이 밝아집니다.

영안이 밝아지면, 예전에는 허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까지 깨닫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까지 깨닫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이중적이고 가증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가룟 유다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살했습니다.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죄책감을 느끼면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십니다.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죄와 허물을 완전히 도말해주십니다. 죄에 대한 기록을 없애버리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기억합니다. 자신이 범한 죄가 기억나서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정죄합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을 정죄하는 마음은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을 정죄하면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낙심합니다. 웃음이 사라집니다. 슬퍼하며 삽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면 정말 기억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도말해주신다고 말씀하셨으면 정말 도말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을 정죄하고 공격하는 것은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죄가 기억나면 괴롭습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힙니다. 이때 하나님 앞에 울부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 부르짖어야 합니다.

 

창세기 21장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용서하셨습니다.

 

회개하다가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받아 마음이 정결해졌다는 사인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져서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회개한 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자신의 고민을 가지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그때부터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죄책감에서 해방됩니다. 자유함을 경험합니다. 행복해집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불을 받을 때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평생 보상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는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죄를 보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회개하며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죄책감에서 해방되려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지 않으면,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또 다시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여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면, 죄를 이기고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신이 회개한 죄를 다 잊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은혜 충만한 가운데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날마다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해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과거에 죄를 많이 범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거룩하게 살게 되자, 사람들은 어거스틴을 ‘성자’라고 합니다.

과거에 매이지 마세요. 과거 때문에 고민하지 마세요. 회개했다면 고민하지 마세요.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재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거룩하게 사는 사람을 사람들은 귀하게 여깁니다. 훌륭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과거에 매이지 말고, 회개했다면 다 잊으세요. 성령으로 충만하여 거룩하게 멋지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우리를 죄책감에 매이게 합니다. 우리를 정죄합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낙심하고 절망하게 하고, 타락하게 합니다. 속지 마세요.

로마서 8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정죄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여 거룩하게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매이지 마세요. 은혜를 받고 거룩하게 살면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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