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송구영신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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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1 18:56 조회3,386회 댓글0건본문
너는 복이 될지라 - 송구영신예배
너는 복이 될지라
2008년 12월 31일(주일예배)
본문 / 창세기 12:1~4
에베소서 1장 3~6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인류 역사의 드라마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영원한 미래까지 모든 것에 대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에 보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20세기, 21세기에 태어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복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과 세상의 복이 있습니다.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이 있습니다.
땅의 복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일시적으로 받는 복입니다. 땅의 복은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다 해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복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현재는 물론이요 영원한 미래까지 영원히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 믿음으로 살다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영생복락을 누리는 신령한 복은 세상의 복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택하신 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목적이 아주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 없이 우리를 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인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이사야 42장 8절에 보면,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통해 영광과 찬송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찬송과 영광을 우상이나 인간에게 돌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만드신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구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려는 계획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창세기 12장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족속에게 임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고, 아브라함을 복이 되게 하실 것이요,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창세기 13장 14~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5장 13~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왜 당장 주시지 않으시고, 왜 기다리게 하셨습니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죄를 짓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들을 징벌하시지 않으십니다.
죄악의 분량이 찰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십니다. 죄악이 가득 차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아모리 족속의 죄가 가득 찰 때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신 후,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모리 족속의 죄가 가득 차서 멸망하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족속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가득한 가나안 땅을 가리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타락하면, 땅이 심판을 받습니다. 사람이 타락하면,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가나안 땅은 더러운 땅이요, 죄인들이 사는 땅이요, 곧 멸망할 땅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가리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사는 곳은 성령 충만한 곳이 됩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어떤 복이 임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바르게 살지 못하는 자에게 어떤 저주가 임하는가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28장 4절에 보면,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것이 다 잘 됩니다.
신명기 28장 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이 사는 땅에서 받습니다.
신명기 28장 11~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때를 따라 비가 내리면, 땅은 옥토가 됩니다. 좋은 땅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아름다운 보물창고를 여시고 복을 부어주셔서 우리가 사는 땅이 복 받는 땅이 됩니다.
신명기 28장 18~19절에 보면,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토지의 소산이 저주를 받습니다.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신명기 28장 23~24절에 보면,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비가 와야 하는데, 비가 오지 않고, 모래 바람이 불어옵니다. 모래 바람이 계속 불어와 모래가 쌓여 온 세상이 사막이 됩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주입니다.
신명기 28장 38~40절에 보면,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뿌릴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네가 포도원을 심고 가꿀지라도 벌레가 먹으므로 포도를 따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 네 모든 경내에 감람나무가 있을지라도 그 열매가 떨어지므로 그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주를 받아서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신명기 28장 42절에 보면, “네 모든 나무와 토지 소산은 메뚜기가 먹을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라크가 있는 곳이 에덴동산이 있던 곳입니다. 에덴동산이 있던 곳이 지금은 사막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석유가 나서 먹고살지만,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주를 받으니 에덴동산이 사막으로 변했습니다.
에스겔 36장 35절에 보면,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이 달라지면, 땅도 달라집니다. 저주 받을 인간이 사는 땅은 저주를 받지만, 축복을 받을 축복의 사람이 사는 땅은 에덴동산으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창세기 22장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 보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실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창세 전에 계획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10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메시아로 오셔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갈 사람들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리기로 작정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어떻게 이루어가십니까?
첫째, 창세기 12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떠나야 할 곳을 떠나야 합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려야 합니다. 끊어야 할 것을 끊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수아 24장 2~3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다른 신을 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았습니다. 사신우상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집안의 사람들은 술을 잘 마셨습니다. 그리고 단골무당이 있어 무당이 우리 집에 자주 왔습니다. 그러니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저도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멋도 모르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후, 모든 것을 끊어버렸습니다. 절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이 술을 좋아하셔서 저는 밤낮 술심부름을 하러 다녔습니다. 주전자를 들고 술을 사오다가 제가 먼저 마신 적도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저도 술을 꽤나 마셨을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 동네에 잔치가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술잔을 돌렸는데, 중학생들에게도 술잔을 돌렸습니다. 제 앞에 술잔이 왔습니다. 그때 저는 벌떡 일어나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여보시오. 내 동포여, 주 아니 믿다가 이 세상 불 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옛날의 잘못된 것을 철저히 끊어버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분은 완전히 떠나야 할 것을 떠났습니까? 죄에서 떠나셨습니까? 죄의 습관으로부터 떠났습니까? 술 문화에 여전히 젖어있지는 않습니까?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문화를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나쁜 습관과 문화로부터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미국에서 목회하는 어느 한국인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은 카지노에서 노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빠져 해어나지 못했습니다.
자기 돈은 물론이요 아내의 돈까지 노름하느라 다 써버렸습니다. 자동차도 팔아 노름하는 데 썼습니다. 심지어 교회의 돈까지 노름하는 데 썼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목회를 할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생활할 수 있겠습니까.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목회자도 노름에 빠지니 해어나지 못하는데, 평신도야 오죽하겠습니까.
끊어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완전히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버려야 할 것을 버려야 합니다. 떠나야 할 것을 떠나야 합니다. 끊어버려야 할 것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둘째,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삶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믿음의 생활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말씀대로 삽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에 보면,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생활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믿음이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모든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모든 저주가 임합니다.
믿음생활을 잘 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믿음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생활을 올바르게 하는 사람에게 축복이 따라옵니다.
마태복음 21장 21~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가 구하는 대로 다 이루어주시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고 구하는 것과 말씀대로 사는 것은 같습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것으로 믿음이 나타납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믿음이 살아있습니다.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죽은 사람입니다.
믿음은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똑바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똑바로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2.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똑바로 알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거룩하게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합니다.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삽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소원,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소원을 가지고 삽니다.
셋째, 창세기 12장 7~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에 경건하게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중심으로 생활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제단이 무너지면 망합니다. 신명기 27장 6절에 보면,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았기 때문에 치면 쉽게 무너집니다. 날마다 제단을 쌓는 사람들은 제단이 반듯하게 정리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제단을 쌓는 일에 게으르면, 제단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단의 불은 꺼지면 안 됩니다. 제단의 불이 꺼졌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멸망했습니다. 성전이 불탔습니다.
여러분의 가정 제단에 언제나 불이 켜져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불이 켜져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불이 커져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을 쳤습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을 치고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한곳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옮겨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장막생활을 했다는 것은 언제든지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늘에 있는 본향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잠시 살다가 떠나는 나그네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기도생활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을 항상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제나 함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7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저와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9절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복을 받은 것처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것’은 크리스천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된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 천국의 축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두 부류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22~23절에 보면,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약속으로 말미암은 자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29절에 보면,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육체를 따라 난 자는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성령을 따라 난 자’는 거듭난 사람, 믿음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둘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있습니다. 이스마엘과 에서는 육체를 따라 난 자요, 이삭과 야곱은 성령을 따라 난 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성도,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난 자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려면,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믿음의 시련을 주십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성도들에게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시험과 시련을 당하게 하십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시련을 잘 통과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때까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믿음의 시련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믿음의 시련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외적 시련과 내적 시련이 있습니다. 외적 시련은 환난과 핍박, 재난, 가난, 질병을 통해 당하는 시련입니다. 내적 시련은 유혹을 받아 범죄하고 타락하는 것, 미혹 되어 이단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적 시련은 무서운 것입니다. 환난, 핍박, 재난, 가난 등의 외적 시련보다 유혹을 받아 범죄하고 타락하는 것, 미혹 되어 이단으로 넘어가는 것이 더 위험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환난이나 핍박, 재난이 왔을 때에는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빨리 성장합니다. 물론 낙심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 큰 은혜를 받고, 믿음이 쑥쑥 자랍니다.
그러나 유혹을 받아 범죄하고 타락하면, 믿음이 흔들립니다. 자칫하면 믿음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보다 잘 사는 사람이 유혹 받기 쉽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 유혹 받기 쉽습니다. 세상에서 잘 된 사람일수록 유혹 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소돔 고모라는 타락하여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살게 되면서 타락한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지금은 환난의 때요 시험의 때입니다. 금년보다 내년은 더 힘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환난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환난이 왔을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깨어 기도합니다. 깨어 기도하다 보면, 은혜를 받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기적을 체험합니다. 믿음이 온전해집니다.
마지막 때에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환난을 바라보며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 됩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환난을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 성령 충만하면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어떤 환난이 와도, 어떤 시험이 와도 끄떡없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승리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전화위복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간증거리가 더욱 많아지고, 믿음이 온전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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