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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3장

믿음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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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4:43 조회3,2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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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적

 

믿음의 적

2010년 06월 04일(금요철야)

본문 / 창세기 3:1~6

 

사람들은 누구나 보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보물을 많이 모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있는 보물보다 더 귀한 보물은, 우리가 가진 "믿음"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믿음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일반적인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편안하게 삽니다. 만약 믿음이 없으면, 편하게 살 수 없습니다.

건물에 기둥이 없는데도 지붕이 얹혀있습니다. 건물이 무너질 것이라 생각하면 불안해서 앉아있을 수 없습니다. 건물이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앉아있을 수 있습니다.

차를 탈 때, 차가 폭발하지도 모르고, 사고가 날지도 모르지만, 편안하게 차를 타고 다닙니다. 사고가 날 때 나더라도, 평소에는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음식점에 가서 어떻게 음식을 안심하고 먹습니까? 그 안에 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괜찮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을 때 속더라도 믿는 것이 좋습니다. 부부사이에도 속을 때 속더라도 서로 믿고 사는 것이 유익합니다. 의심하는 그 때부터는 병자가 됩니다. 의처증, 의부증이 생기고, 아주 고약한 정신병이 생깁니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의심하지, 그 전에는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처럼 일반적인 믿음을 가진 자체가 축복입니다.

 

둘째, 구원받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원받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합니다. 교회에도 나가고, 기도생활도 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아갑니다.

 

구원받는 믿음은 택한 백성들에게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창세 전에 택한 백성,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백성들에게만 이 믿음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신 우리의 메시아가 되심이 믿어지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이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능력을 행하는 믿음입니다. 은사적인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지팡이를 가지고 홍해를 향해서 갈라지라고 하니까 홍해가 갈라져 육지같이 되어서 건너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기적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믿음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 행하는 믿음을 주신 사람은 기도하면 귀신이 쫓겨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면, 병이 낫는 등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이것을 믿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찾을 때 언제나 기대감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뭔가 보너스를 주실 것이다. 나를 위해 상을 주실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사람을 자꾸 찾아가서 요구하면, 귀찮게 생각하고, 도망가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구든지 하나님께 찾아오라고 하십니다. 찾아오는 사람은 만나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산다고 했습니다. 살 길이 열리고, 문제가 해결된다는 의미입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가진 사람을 기뻐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을 가지게 되어 믿음이 그 안에 생기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자녀로서 변화되기 시작하는데, 은혜를 받아 믿음이 자랄수록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시고 좋아하십니다.

성품 자체가 하나님을 닮아서 좋기 때문입니다. 악했던 성품이 착해집니다. 불의한 성품이 의로워지고, 거짓된 성품이 진실해지고, 교만하던 성품이 겸손해지는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둘째,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운 것을 보면, 믿음이 참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거룩하게 살려고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한 소원과 꿈과 계획을 가지고 살고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백성들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첫째, 구원의 축복을 받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시민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1:22).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막 9:23).

그러므로 끝까지 믿고, 끈질기게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끝까지 기도해보십시오. 반드시 은혜를 주시고 응답해주시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함께해주시고,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2:2~3). 믿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이것을 믿으셔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존귀한 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아브라함처럼 살다가 존귀한 자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의 근원이 되어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을 약하게 만들고, 우리의 믿음을 병들게 하고, 믿음을 흔드는, 믿음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의심’입니다.

 

첫째, 의심은 사탄으로부터 옵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속에 의심을 집어넣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면, 마귀로부터 온다는 것을 아시고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의심 마귀야 물러갈지어다.”라고 대적하십시오. 사탄은 의심으로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와가 혼자 있을 때 뱀이 하와에게 접근해서 의심을 가지게 했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의심을 집어넣기 위해 거짓말을 해서 하와의 마음이 하나님을 의심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뱀은 아주 간교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하고 시험했습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뱀에게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셨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덧붙임으로 올무에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정녕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에서 허점을 보여서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알고 있어야 하는데,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말씀하셨지, 만지지도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뱀이 여자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고 말하며 이간질했습니다.

뱀이 선악과를 만져도 죽지 않는 것을 본 하와는 더욱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고, 아마 선악과를 만지는 즉시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와가 뱀의 말에 의해 미혹을 받고 선악과를 보았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에 보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렇게 미혹되었다면, 먹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어 그도 먹었습니다.

하와는 뱀과 교제하는 동안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인격도 의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되어 결국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뱀과 같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민수기 13장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사람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믿음이 없는 열 사람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라고 말했습니다(민 13:31).

그리고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민 13:32~33). 믿음이 없는 말을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1절에 보면,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의 한마디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고, 흥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말의 힘이 대단합니다. 그러므로 혀를 잘 써야 합니다.

말할 수 있다고 해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좋은 말을 하면 복을 받고, 사람을 살립니다. 그러나 쓸데없는 말을 하고 악한 말을 하고 저주하고 믿음이 없는 말을 하면 얼마나 해가 되는지 모릅니다.

 

민수기 14장 2~4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의심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가까이하거나, 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얼마나 손해를 보게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믿음이 좋은 사람을 잘 살펴서 믿음이 좋은 사람을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을 사귀십시오.

믿음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고,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열 사람이 말한 것 때문에 백성 전체가 난리입니다. 온믿음 없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믿음을 다 잃어버리고, 의심을 갖게 되니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어 원망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반역행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결국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행위입니다. 자기도 하나님과 같이 되어보겠다는 반역행위입니다.

뱀이 “이것을 따먹으면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라고 말한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반역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깨어지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때, 순종할 때, 산 믿음, 생명이 있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불순종할 때 죽은 믿음이 됩니다.

그런데 하와는 불순종하므로 그의 믿음은 죽고 말았습니다. 하와는 범죄를 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됩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보십시오. 이 세상 사람들이 죄를 범하지 않는다면, 천국과 같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문제가 많이 생기고, 고통이 많은 것은 죄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근심 염려가 생기고, 고민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고, 불안하게 되고, 죽음이 오게 되고, 모든 저주를 받게 됩니다. 한마디로 죄는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여러분, 행복하게 살려면,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든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로막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습니다. 예레미야 5장 25절에 보면,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향하여 좋은 생각을 가지고 계시고,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를 축복하고자 하시는데, 우리의 허물이 이러한 것들을 물리쳐버립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모두 막아버립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잘나가다가 문제가 생깁니다. 잘 될 것 같은데. 중간에 깨어지면 얼마나 속상합니까?

알고 보면 과거에 범한 죄가 들통 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죄가 우리의 축복을 가로막습니다.

 

죄는 기도응답을 가로막습니다. 이사야 1장 15절에 보면,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아서, 사람을 죽인 피가 아직 묻어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로막습니다. 하나님과 좋은 교제를 해야 하는데, 죄가 중간에 담을 쌓아버립니다. 그러면 교제가 끊어집니다.

사울 왕을 보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시니까 그 빈자리에 악신이 들어와서 역사했습니다. 그래서 악한 생각을 하게 하고, 악한 계획을 하게 하고, 남이 망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을 죽이려는 못된 마음이 가득해서 괴로워서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악한 충동이 생기니까 자기 자신과 싸우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기도 견디지 못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다니고, 나중에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해 아들들과 함께 한날에 죽고 맙니다.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얼마나 불행하게 일생을 마쳤는지 모릅니다.

 

둘째,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만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의심이 생깁니다.

여러분,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순간순간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세상만 바라보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우리의 육안을 가지고 세상만 바라보고 뉴스나 신문을 지나치게 바라볼수록 믿음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이 생깁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이 하나님을 의심하고 믿음이 없는 말을 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가나안 땅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이긴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가나안 사람만 보았습니다.

성을 쌓고 살고, 집도 크고, 사람들도 자기들보다 크고 힘이 더 세어 보이니까 ‘저렇게 강한 민족과 싸웠다가는 우리가 다 죽겠구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세상만 바라보니까 자신감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두려워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블레셋군과 골리앗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담대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절대로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한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한분 외에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 사람의 올무에 붙잡힙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내가 흥하고 망하는 것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만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사무엘상 17장 45~47절에 보면, 다윗이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전쟁 자체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전쟁에 이기고 지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다윗은 나이가 어리지만, 믿음이 대단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 줄 똑바로 알고 있으니까 담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당당하게 나아가 물맷돌을 돌려 한방에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게 해서 기절시켰던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세상만 바라보며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밤중에 바다 위를 걸어서 오시니까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 배를 타고 가다가 유령이 나타난 줄 알고 두려움에 떨며 놀라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4:27).

그러니까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마 14:28).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30~31절에 보면,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의심하는 순간,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의심이 생기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믿음이 강하면, 의심이 없어집니다.

베드로가 왜 믿음이 없어지고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까? 바다에 풍랑을 일으키는 강한 바람을 보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우리는 바람을 보지 말고, 하늘과 땅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예수님만 바라보고 걸어갔다면 예수님께 당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이 세게 불고 파도가 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이 아닐까’라고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 풍랑이 일어나고 환난이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세상이 뒤숭숭해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의 죽고 사는 것은 세상에 있지 않다. 나의 죽고 사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손에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내 머리카락 하나 상하게 할 자가 없다.”라고 믿음의 선언을 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실까요? 그리고 시험이 오면 귀찮은데,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하실까요?

시험은 괴롭고 귀찮게 보여도,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실 때는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주 간사합니다. 너무 간사해서 어려울 때는 “주여, 주여.”하지만, 편안하도록 내버려두면 교회에 잘 나오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면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결국 타락하고 맙니다.

우리는 긴장을 풀고 살면 안 됩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루라도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못 사는 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환난이 왔을 때에만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평안할 때에도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항상 깨어있는데, 쓸데없이 시험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잠자면 안 되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셔서 더 강한 믿음을 갖게 하시기 위해 여러 가지 시험 당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시험이 오면 깨어 기도합니다. 깨어 기도하다 보면, 믿음이 생깁니다. 어려움을 잘 참고 인내합니다.

그러다 보면 웬만한 시험은 잘 이겨냅니다. 그러면 점점 더 믿음이 온전해집니다. 우리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온전하게 만드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챔피언이 되려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권투선수가 챔피언이 되려면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식사하지 않고 찜통에 들어갔다 찬물에 들어갔다 하며 고생합니다. 그리고 링에 올라가서 권투하려면 머리가 빙빙 돌아서 정신이 없습니다. 챔피언이 되기가 그렇게 힘듭니다.

편안하게 먹고 자고 놀면, 챔피언이 되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과정을 밟아서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게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왔을 때에 이기기만 하면 축복이 됩니다. 견고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에게 환난과 시험이 몰려올 때에 승리하는 비결은 환난과 시험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환난 자체를 바라보면 근심과 염려가 생기고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시험이 왔을 때 환난과 시험을 보지 마시고 빨리 얼굴을 들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환난이 오고 문제가 생겨도 이 말씀만 붙잡고 나아가십시오.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고, 이것이 분명히 축복으로 바뀔 것이다.”라고 믿음으로 선언하시고,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그러면 이깁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으니 내가 능히 이 시험을 감당할 수 있다”라고 믿음으로 선언하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 주신다 하시고 능히 감당하게 해주신다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시험을 이기게 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 보면,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떠나지 않으십니다. 바르게 살지 못하고, 걱정거리가 많고, 돈이 떨어지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나를 떠나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속지 마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결코 나를 떠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붙잡고 선언하십시오. 그러면 의심이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져버리고 승리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시고,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언제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랑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믿으면 승리합니다.

 

저는 제일 마음 아픈 것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집사님이 자기 몸에다 기름을 끼얹고 자살해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괴롭고 아무리 속상하고 화가 난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기도 하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기도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믿는다면, 그렇게 어리석을 짓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해결됩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우리가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아시고, 우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 사랑을 믿는다면 그렇게 낙심하고 절망하여 자살할 이유가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수많은 환난과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승리한 비결은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58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앞으로 창세 이후로 가장 큰 환난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는 승리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서 승리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도 이기고 예수님께 붙어있는 우리 성도들도 이긴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긴다 하면,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붙어있으면 이깁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덩달아 이깁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어떤 환난과 시험이 와도 의심하지 않고, 견고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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