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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장

돕는 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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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0:06 조회3,2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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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배필

 

돕는 배필

2009년 12월 18일(금요철야)

본문 / 창세기 2:18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모든 만물을 6일 동안에 창조하시고 맨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담 한 사람을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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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28~29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2장 8~9절에 보면,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동산을 만들어주시고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는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나무들을 많이 심어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땅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10~14절에 보면,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15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나서 아담에게 주신 복이 얼마나 큽니까. 에덴동산만 해도 어마어마하고 아주 좋은 곳으로 만드시고 거기서 살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부어주신 축복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이 다 돌아다닐 수도 없고, 다 쓸 수도 없는 넓은 동산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십니까? 저와 여러분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것이 이렇게 엄청나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 믿음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다 확인할 수도 없지만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것이 그렇게 어마어마합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의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라면,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시고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이 무엇이 아까워서 주시지 않겠습니까?

믿음을 크게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에 대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아주 좋은 환경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장 18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금이 여기저기 널려있을 정도로 좋고 모든 것이 풍성했지만,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은 좋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아담이 혼자 사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담이 혼자 살면 문제가 많습니다. 첫째, 고독합니다. 고독한 궁전은 감옥입니다. 아무리 좋게 지은 큰 궁전이라 할지라도 혼자 산다는 것은 감옥입니다.

둘째, 생육하고 번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남자 혼자 어떻게 생육합니까? 혼자 살 때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독하게 사는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20~22절에 보면,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23절에 보면,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담이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얼마나 좋아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말씀을 예수님이 인용해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창세기의 기록이 정확하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성경 말씀은 일점일획도 가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9장 3~5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창세기 2장 24~25절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창세기의 기록은 누가 꾸며서 말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 아담에게 하와라는 아내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잠언 18장 22절에 보면,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주심으로 고독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남자가 여자 없이 혼자 산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고양이나 개를 기르면서 삽니다. 얼마나 한심한지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재미없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들어주심으로 얼마나 축복되었습니까? 아담에게 하와를 주신 것은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잠언 5장 18절에 보면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네 샘’은 결혼한 아내를 가리킵니다.

샘이 있어서 맑은 물이 흘러나옵니다. 그 샘의 물로 밥도 해먹고 세수도 하고 목마름도 해결합니다. 옛날에는 샘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좋은 아내와 사는 것은 집안에 생수가 나오는 샘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축복이 됩니다. 그래서 네 아내로 복되게 하라, 아내를 보기만 해도 즐겁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서 9장 9절에 보면,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고달픈 삶입니다. 농사를 짓고 장사하고 먹고 살기 위해 고생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런데 고생을 많이 하는 삶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낙을 누리며 살도록,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살므로 누리는 낙이 없다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중요한 축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아내를 주셔서 함께 살 경우에는 축복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잠언 14장 1절에 보면,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바로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헌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지혜로운 좋은 아내를 얻으면, 집안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집안이 점점 더 잘되고 일어나면 여자의 덕인 줄 알아야 합니다. 남자들은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자에게 이런 힘이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잠언 19장 14절에 보면,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모로부터 집과 재물을 물려받았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더 큰 축복은 슬기로운 아내를 얻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셔야 받습니다.

 

슬기로운 아내와 함께 살 때 받는 복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잠언 31장 10~12절에 보면,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26~31절에 보면,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자기의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현숙한 여인, 슬기로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사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성경이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둘째,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부부가 언제나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었습니다.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말했습니다(창 2:23).

부부는 언제나 한 몸으로 서로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를 남으로 생각하지 말고, 서로 자기의 몸과 같이 생각하고 사랑해야 행복해집니다.

 

에베소서 5장 28절에 보면,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33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심은 대로 거둡니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심었느냐에 따라 거두는 날이 옵니다. 부부는 꼭 이 원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상대편에게 심는 대로 모두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이 돌아옵니다. 얼마나 서로 귀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서로가 귀해집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7절에 보면,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옛날에 여자들을 얼마나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아내를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서 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기도가 막히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인데, 자기 아내를 업신여기고 함부로 하면 어떻게 기도가 되겠습니까? 기도가 막힙니다. 아내를 귀하게 여기면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언제나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부가 언제나 한 몸이므로 내가 귀하게 대접받고 싶으면 상대편을 귀하게 잘 대접하면 됩니다. 그러면 둘 다 점점 더 잘됩니다.

그런데 부부가 함부로 대하면 자식들도 얼마나 천하게 보는지 모릅니다. 상대편을 천하게 대하면 나도 천해집니다. 그러나 서로를 귀하게 대하면 서로 귀해집니다.

 

본문 창세기 2장 24절에 보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인용해서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5).

부모를 떠나라는 것은 부모를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부부가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부부가 한 몸이 된 상태에서 부부가 합심해서 부모를 잘 모시고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선순위의 첫째는 부부가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모든 것이 깨어집니다. 이 성경말씀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부부가 행복하게 하나가 될 때, 행복한 부부가 부모를 잘 모시고 자녀들을 잘 키우면, 아주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시어머니는 아들을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장가를 보냈는데, 아들과 며느리의 사이에 끼어들어와 잡니다. 이것은 아들 부부가 하나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불행한 가정으로 만드는 것이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저희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잘 살도록 축복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어느 권사님은 제가 심방을 가보니 한 건물 안에 있는 아파트 두 채를 씁니다. 한 곳에서는 자녀들이 살고, 한 곳에서는 노부부가 삽니다. 얼마나 지혜로운지요. 가까우니까 항상 가서 보고, 손자손녀들도 자주 놀러옵니다.

30년간 따로 살았던 남녀가 하나 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자기네들끼리만 살아도 힘든데, 부모가 방해하면 어떡합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이 말씀을 인용해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부는 언제나 한 몸을 이루어야지, 떨어져 있으면 그 시간이 위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떨어져있으면 마귀가 틈탑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분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따로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1~5절에 보면,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 남자나 여자나 혼자 있을 때 얼마나 위험한줄 압니까? 혼자 있으니까 음행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부부가 함께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는데, 혼자 있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결혼을 해서 자기 남편과 아내를 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의무를 다하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4절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은 “내 몸을 당신에게 드립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결혼했습니까? 성경 말씀을 알고 결혼해야 합니다.

부부가 가정을 이루고 살면, 자기 몸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남편은 아내의 것이고, 아내는 남편의 것입니다. 이 원칙을 세워놓고 살아야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토라지면 돌아눕고, 옆방으로 도망가 버립니다. 그러면 사탄이 틈탑니다. 악한 마음이 생기고, 뛰쳐나가 딴 짓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가정이 완전히 깨어져 버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분방하되 다시 합하라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남자들만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자들도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남자나 여자에게나 똑같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하고, 특별히 여자들은 되도록 남자의 뒤를 따라 다녀야 합니다. 언제나 서로를 지켜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와가 언제 범죄한 줄 압니까? 혼자 있을 때 그랬습니다. 아담이 어디 갔는지,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아 모르겠지만, 하와가 혼자 동산을 두루 다니다 보니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가 얼마나 먹음직스럽고 보암직한지, 그때 사탄이 틈탔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은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니까 하나님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와는 이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뱀이 얼마나 간교하게 속여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확신이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절대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열심히 예배드려야 하고, 하나님 앞에 날마다 깨어 기도해야 하고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교육은 날마다 반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시는 분들은 참 잘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이 있고 날마다 성경을 읽는 시간이 있는 사람은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신앙교육은 천국 가는 그 날까지 반복되어야 합니다. 그저 한두 때만 열심을 내다가 그만두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계속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렸을 때, 저는 세 가지를 결심하고 실천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평생에 축복이 되었습니다. 중ㆍ고등학교 6년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입니까.

첫째, 예배는 절대 빠지지 않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는 교회에 나가 꼭 드린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는 나가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에는 목숨을 거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내가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교회를 나가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면, 자비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일으켜주시고 회복시켜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루에 세 번씩 교회에 가서 기도한다고 결심했습니다.

학교에 갈 때,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저녁 먹고 난 후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형식적인 것 같지만, 그것을 꾸준히 지키는 것 자체가 매우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긍휼히 여겨주시고, 어떤 때에는 무릎 꿇고 앉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고 성령이 뜨겁게 임하셔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증거였습니다.

 

하루에 한번이라도 교회에 나와 기도하는 것이 참 중요한데, 저는 날마다 세 번씩 교회에 나갔습니다. 이것이 평생의 축복이 되었습입니다.

지나고 보니 받은 은혜도 많고 체험도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문제도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얼마나 수지맞았는지 모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날마다 한번 이상은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얼마나 간증거리가 많아지는지 모릅니다.

 

셋째. 성경을 한 장 이상 읽는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떤 때는 열 장도 읽고, 수십 장씩 읽었습니다. 항상 성경을 읽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결심하고 지키니까 결과적으로 칠전팔기가 되었습니다. 반드시 넘어져도 일어나고 회복되었습니다.

 

우리가 항상 명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마귀의 공격을 가장 받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일 힘들 때가 바로 혼자 있을 때입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에는 내 신앙을 지키며 살기 쉬운데, 아무도 없이 혼자 있을 때 사탄이 공격하기가 가장 좋은 시간이 됩니다.

그래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에 마음관리를 잘하고 믿음관리를 잘하고 시간관리 잘해서를 혼자 있을 때 은혜로운 시간을 잘 보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 어디에 가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셉이 왜 위대합니까? 홀로 노예로 팔려가 객지 생활을 하지만, 경건 생활을 목숨처럼 지켰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없을 때,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받을 때도 요셉은 단호하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하며 물리쳤습니다(창 39:9).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부는 떨어져있을 때가 위기입니다. 떨어져있으면 위기인 줄 알고,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 나사 풀린 듯 느슨하게 있으면 안 됩니다.

부부가 가장 편안하고 좋을 때는 함께 있을 때입니다. 부부는 언제나 몸과 마음과 신앙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는 신앙도 하나가 되면 갑절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왜 불신 결혼을 하면 안 되는지 압니까? 그러면 결혼한 그 날부터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평생 고생합니다.

장가 가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잘 믿는 예쁜 처녀가 있는데, 자기 아내로 삼고 싶으니까 교회에 나가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결혼하고 나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고생문이 활짝 열립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결혼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남자들도 믿음이 좋은 처녀를 구해야 합니다. 믿음 없는 처녀를 구하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믿음 좋은 짝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몸도 하나, 마음도 하나, 신앙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둘씩 짝지어 보냈습니다. 혼자 내보내면 당하기가 쉽기 때문에 둘씩 짝지어 서로 돕게 했습니다.

그런데 심방을 해도, 전도를 해도 최고의 짝은 부부입니다. 전도할 때도 부부가 함께하면 남자를 만나든 여자를 만나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역자들도 심방할 때 제일 편하고 좋은 것이 부부가 함께 심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둘씩 짝지어 보내신 것과 같이, 둘이 하나 될 때 두 배의 효과가 아니라, 어떤 때는 네 배, 열 배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전도서 4장 9~12절에 보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부가 하나 되어서 서로 협력할 때 승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하나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저는 결혼을 하고나서 수지맞았습니다. 목사니까 제일 힘든 일이 설교 준비입니다. 그래서 설교 준비를 하게 되면, 아내에게 “여보, 나 설교 준비합니다. 기도해주세요.”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제가 설교를 쓰는 시간에 아내는 다른 방에서 기도합니다. 찬송을 부르고 얼마나 힘 있게 기도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 기도소리를 들으면서 말씀을 준비할 때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제가 설교준비 다 끝날 때쯤이면 아내의 기도가 끝납니다. 저는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제게 얼마나 힘이 되고 축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한 번은 제가 어느 교회에서 저녁에만 사흘 동안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첫 날이 이상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시커멓고 깜깜했습니다. 제 원고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흥회를 인도할 때에는 제가 제일 잘 하는 설교원고를 가져가서 설교하는데, 그 날은 도무지 횡설수설하고 목도 쉬어 제대로 설교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몰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목도 쉬고 앞이 캄캄해서 제대로 설교하지 못했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은 설교도 얼마나 은혜롭게 되는지, 설교하면서 제가 은혜를 많이 받고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오니 아내가 “오늘을 어땠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집회 인도하는 시간에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서 계속 기도한 것입니다. 제가 그런 경험을 한 다음부터는 항상 아내에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우리 교회 개척 초기에는 금요철야기도를 토요일에 새벽예배 드리기 직전까지 인도했습니다. 온밤을 혼자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주일 설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새벽 설교, 낮 설교, 저녁 설교 세 편의 설교를 정리해야 하는데, 금요일에 밤을 새었으니 얼마나 피곤합니까. 그래서 책상 앞에 앉으면 졸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면서 말씀이 떠오르는데,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마치 누군가 설교를 불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잊어버릴까봐 빨리 받아썼습니다.

설교문이 완성되어서 가는데, 어디선가 찬송소리가 들렸습니다. 다른 방에서 아내가 저를 위해 기도하고 찬양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내가 기도를 시작한 그 시간에 성령이 오셔서 피곤이 사라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부가 함께 목회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본문 창세기 2장 18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만들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돕는 배필’은 헬퍼(helper)입니다. 우리기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부부가 하나가 되려면, 서로서로 상대편을 위해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만 남자를 위해 돕는 배필이 아닙니다. 남자는 여자를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21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서로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종노릇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만드셨을 때, 아담의 갈빗대로 만드셨습니다.

1. 남녀가 평등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자가 올라설까봐 아담의 머리뼈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남자 밑에 짓밟힐까봐 아담의 발가락뼈로 만들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은 남녀를 아주 평등하게 만드셨습니다.

 

2. 부부가 인격적으로 결합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으로 결합하게 하기 위해 심장을 보호하는 갈비뼈로 만드신 것입니다. 사랑으로만 인격적인 결합이 이루어집니다. 사랑이 있을 때 서로 희생합니다. 사랑이 있을 때 서로 섬깁니다. 그래서 하나가 되고,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셋째,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일남일녀의 결합이 이루어져야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돕는 배필을 만들 때 많이 만들어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사람만 만들어주셨습니다.

말라기 2장 15절에 보면,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우선 우리 자신이 경건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경건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가 몇 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살아보십시오. 그 집안이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배다른 자식들이 서로 싸우다 보면, 그 집안이 엉망이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크니까 자녀들이 모두 악한 자녀가 되고 신앙도 없는 자녀가 됩니다.

많은 자손을 얻는 것보다 경건한 자손을 얻는 것이 축복이고 잘되는 길이기 때문에 일남일녀의 결합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한 여자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잠언 15장 16~17절에 보면,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경건한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사는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재산이 얼마나 많으냐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느냐입니다. 얼마나 잘사느냐보다 얼마나 서로 사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서로 미워하는데 궁전에 사면 무엇합니까? 밤낮 싸우는데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면 경건한 가정이 이루어지고, 경건한 자손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가정생활에 성공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가정생활에 실패하면 자신도 불행해지고, 가정도 불행해지고, 사회도 불행한 사회가 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다 받아 누리며 사는 좋은 가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경건한 가정, 뜨겁게 사랑하는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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